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회사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대신 생산해 주는 '파운드리(수탁생산)' 사업에 본격 나섰다. 그동안 자체 브랜드를 부착한 제품 생산에 주력해온 삼성전자가 불황 타개를 위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3일 세계 최대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회사인 미국 자일링스와 전략적 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했다. FPGA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으로 회로 변경이 불가능한 일반 반도체와 달리 용도에 맞게 회로를 다시 새겨넣을 수 있다. 일반 반도체에 비해 가격이 수십~수백 배 비싸며,항공 자동차 통신 등의 분야에 주로 쓰인다.

삼성전자는 세계 FPGA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는 자일링스와 이번 계약을 체결하면서 파운드리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하게 됐다. 삼성 측은 구체적인 계약 금액이나 생산량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지만 2006년 이동통신용 칩을 설계하는 회사인 퀄컴에 반도체 제품을 공급한 이래 가장 큰 계약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만 업체들이 사실상 독점해온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자일링스에 버금가는 대형 파트너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사업을 확장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경기 침체로 메모리 사업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비메모리 사업으로 영토를 넓혔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기흥사업장의 비메모리(시스템LSI) 전용 생산라인에서 4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공정으로 자일링스 제품을 대신 생산해 준다. 서병훈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상무는 "프로그래머블 반도체 분야 선두 기업인 자일링스와 제휴해 윈-윈이 기대된다"며 "자일링스의 고성능 FPGA 제품에 적합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제조 능력,파운드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센트 통 자일링스 부사장은 "삼성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 공정인 '커먼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고,저전력 반도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라며 이번 계약의 배경을 설명했다. 커먼 플랫폼은 IBM과 삼성전자,차타드 등 3개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반도체 생산공정 기술의 이름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