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했던 A사는 작년 10월 SC제일은행에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에 따른 유동성 지원을 요청했으나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푼의 자금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은행 측은 오히려 작년 5~7월에 대지급해줬던 키코 정산금을 대지급 시점의 환율(원 · 달러 1020~1040원 선)보다 높은 올해 1월의 환율(1360원대)로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가 지난해 10월1일 키코 가입 업체 등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에 신속하게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을 활용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은행 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중소기업중앙회와 본지가 총 100개 키코 가입 업체의 유동성 지원 여부를 조사한 결과 패스트 트랙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업체는 대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9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올해 들어 지원받은 곳은 1월 3개사,2월 현재 1개사뿐이다. 유동성 지원 규모도 기업당 평균 손실액(123억원)의 4분의 1 수준인 31억원으로 조사됐다.

키코 가입 업체들이 잇달아 '키코 계약 무효소송' 및 '키코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준비하면서 이들 기업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패스트 트랙 지원을 꺼린다는 불만도 잇따르고 있다.

김태환 중기중앙회 통상진흥부 부장은 "키코 가입 기업 지원 실적이 총 1조4000억원가량이라고 발표됐으나 신규여신은 적고 대부분 대출 전환,만기 연장이어서 실효성이 낮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키코 가입 기업들에 유동성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례가 일부 있다"며 "대출 전환 등 지원 조건이 문제가 되거나 손실 규모가 너무 커서 은행들끼리 합의하지 못해 지원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들이 가급적 유동성 지원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선/정재형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