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선생(1932~2006년)이 타계한 지 3년이 됐다. 작가로서의 존재감이 점점 흐려질 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평가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즘 들어 외국 미술비평가들이 '한국의 보물'을 정작 한국 사람들이 몰라본다고 꼬집던 말이 자꾸 생각난다. 한국인들은 왜 백남준을 신드롬이나 센세이셔널리즘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일까. 왜 그의 예술세계가 바르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백남준은 아방가르드 예술가이기 이전에 미래 비전을 가진 사색가요 해방적 몽상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경계에 살고 경계에서 작업하기를 선택한 포스트모던한 인물이었다. 그의 실험 정신과 파격 역시 어느 한 곳에,한 영역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탈경계 의지와 맞닿아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유목민적 정서의 소유자,세계인에게 어필하는 글로벌 미학의 실천자로서 그는 해프닝의 주도자,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되었다.

초기 행위음악에서 해프닝으로,해프닝에서 비디오로 매체적 확장과 장르적 변신을 시도했던 그는 곧 비디오 조각 · 설치 · 퍼포먼스뿐 아니라 위성중계작업 · 인터랙티브 비디오를 섭렵하는 전천후 비디오 예술가가 됐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아날로그 비디오에서 디지털 비디오로 전환을 시도하고 레이저 광선을 활용함으로써 포스트비디오로 정의될 수 있는 비디오아트의 새장을 열어놓았다.



양식적,미학적으로도 그의 작업은 탈경계적 이중성을 표방했다. 액션뮤직을 비롯해 플럭서스 이벤트,명상 비디오 영역을 관통하는 미니멀리즘과 바로크적 멀티 모니터로 표출되는 맥시멀리즘의 경계를 넘나들며 양식적 혼재의 자유를 구가한 것이다.

이러한 양식적,미학적 이중성은 망명의 상실감을 경험하는 이산 작가로서의 이중 정체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고국은 회귀 불가능한 상실과 부재의 기표로 각인되는 동시에 회귀 열망의 대상으로도 존재하였다. 상실과 욕망,부재와 회귀의 양면성이 코리안아메리칸,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백남준을 일궈낸 토대가 된 셈이다.

백남준의 1993년작 '거북'은 비디오아트 특유의 미학적 이중성을 대변한다. 166개의 모니터로 거북을 재현한 10m 길이의 이 대형 조각은 자연과 기술,동양 정신과 서양 문물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는 물론,초기 비디오의 상징적 모티프를 90년대식의 멀티 모니터 스펙터클로 형상화한 점에서 초시대적 연속성과 함께 탈경계적 이중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거북은 한국인에게 장수,영생,다산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서 거북이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은 무수한 모니터들이 깜박이며 동시다발적으로 내뿜는 빛의 스펙터클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스타카토 클립 이미지들의 난무가 전통 거북 이미지와 상치된다. 그러나 거북의 영구성이 전자 이미지의 순간성으로 해체되고 순간성이 영구성으로 재구축되면서 영원과 순간,죽음과 탄생의 대립항이 '이중적 일체'로 용해된다.

백남준 서거 3주년을 맞아 영원과 순간,죽음과 탄생의 경계마저 흐리는 '거북'을 떠올리며 그의 치열한 삶과 예술을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작가는 자신의 빈자리를 대치할 영생의 메타포,덧없는 인생을 보상할 불후 예술의 메타포로서 '거북'을 제작한 것이 아닐까? 백남준 선생이 남긴 작품 중 일부는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백남준페스티벌'(3월5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다.

/김홍희 경기도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