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웨스틴조선호텔 수석주방장 이민 상무 "22살에 포장마차하며 첫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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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예술…끝이 있을수 있나요"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1층 양식당 '나인스 게이트'.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늑한 분위기의 다이닝 홀은 구한말 고종 황제가 천제(天祭)를 지낸 창 밖 환구단의 풍경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홀을 지나 주방에 들어섰다. 특급호텔의 대표 레스토랑답게 크고 널찍한 주방은 점심 준비에 한창인 요리사들로 분주하다. 흰 위생복을 입은 채 저마다 굽고 지지고 볶느라 여념이 없다.
이때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의 요리사가 손에 든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불을 붙인다. 마치 서커스 쇼의 한 장면처럼 화라락 타오르는 불꽃에도 그의 눈빛은 오히려 고요하기만 하다. 키는 작은데 그의 위생모만 유달리 크고 길쭉하다.
수석 주방장이자 상무인 이민 셰프(47).이 상무는 웨스틴조선호텔에서만 24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2005년 조리사로는 최초로 신세계그룹 임원에 오른 그는 지난 1일 리뉴얼을 단행한 '나인스 게이트'의 총괄 셰프를 맡았다. 호텔 측은 당초 재개장을 앞두고 해외 유명 주방장을 초청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국내 최초의 프랑스식 레스토랑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결국 이 상무를 현업에 복귀시켰다.
▶올해로 요리경력 24년차인데 요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 꿈은 원래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공고에서 기계를 전공하고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했지요. 하지만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급여도 너무 적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혼자 두 동생을 돌봐야 했거든요. 그래서 고심 끝에 포장마차를 시작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술과 음식을 팔면서 요리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
▶ 솜씨가 좋았던 모양이군요.
"사실 손재주가 있다는 얘기를 꽤 들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일하던 중 롯데호텔에 다니던 친구로부터 호텔 요리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경주호텔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조리를 배우기 시작했죠.1986년 실습생으로 호텔에 들어와 6개월 뒤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는데 어느덧 23년이 흘렀네요. "
▶앞으로 어떤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신지.
"기본 바탕은 물론 정통 프랑스 요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식자재를 사용하는 등 한국의 맛을 살려 우리 레스토랑만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곳 셰프로 오기 전에도 조리사업부에서 이 같은 스타일의 메뉴 개발을 담당했어요. 가령 제가 개발한 '갈릭 크러스트 양갈비 요리'에는 양식에 흔히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 절임 대신 우리의 전통음식인 백김치가 들어가도록 하는 식이죠."
▶새로운 메뉴 개발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식자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저만 해도 지금까지 해외로 떠나는 비행기만 100번 넘게 탔습니다. 출장을 가면 꼭 그 지역 특산품과 요리를 직접 경험해 봅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풀코스 정찬으로 12번이나 식사한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나서 또 먹어보곤 했죠.이에 비해 국내에서 우리 고유의 식자재를 발굴하기는 참 어려워요. 사계절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인데도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 그래서 올해는 해외 출장 대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식자재를 발굴해볼 생각입니다. "
▶그렇게 하면 실제 메뉴 개발에 도움이 되나요.
"정보 수집을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음식을 접하게 되면 나중에 돌아와 그대로 한번 만들어 봅니다. 바둑으로 치면 복기라고 할 수 있겠죠.물론 현지에서 웨이터를 불러 향신료 등은 뭘 썼는지 물어보기도 하지만 이제 요리의 형태와 맛을 보면 대충 무슨 재료를 어떻게 썼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
이 상무는 경주호텔학교 외에도 뒤늦게 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해 학사학위를 받았고,2003년에는 연세대 급식경영 석사과정도 졸업한 학구파다. 그는 "요리는 창조적 예술이기 때문에 '컬리너리 아트(요리예술)'라고 한다"며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함께 항상 연구가 필요하고 표현력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요리를 좋아하십니까.
"요리에는 끝이라는 게 없습니다. 재료 한 가지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니까요.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질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어렵죠.각 재료의 궁합을 맞춰야 하고 그에 맞는 소스도 찾아야 합니다. 표현력도 중요합니다. 접시 하나까지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렸다고 우리끼리 말하기도 해요. 음식을 맛있게 먹기보다는 항상 분석적으로 대하는 게 습관처럼 돼 버렸기 때문이죠."
▶어떤 때 요리사로서 보람을 느낍니까.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드시고 찬사를 보내줄 때 가장 즐겁죠.아무리 창조적인 예술작품으로 표현해냈다 해도 결국 최종 판단은 고객이 하니까요.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 때 영부인 만찬과 누리마루 만찬을 맡았을 때 반응이 좋아 나중에 직원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받기도 했죠."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보통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6시30분쯤 집에서 나옵니다. 약 한 시간 뒤 회사에 도착하면 그날 일정을 체크하고 임원회의에 참석하죠.그러고 나서 예약 상황을 살펴본 뒤 점심 준비에 들어갑니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조리 감독 및 서빙을 합니다. 2시부터 4시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는데 팀원들끼리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도 하죠.5시부터는 다시 저녁 영업을 시작해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9시30분~10시까지 일합니다. "
▶업무 시간이 상당한데요. 취미 생활이나 운동은 거의 못하시겠네요.
"건강을 생각해서 퇴근 후 8~10㎞가량을 매일 뜁니다. 토요일에는 집(경기도 안양) 근처 관악산을 오르기도 하고요. 취미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요리에 관한 책이나 영화,만화책 등을 꼬박꼬박 챙겨서 봅니다. 최근 요리를 주제로 한 디즈니 만화영화인 '라따뚜이'를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
▶당연히 라따뚜이(프랑스 전통음식의 하나)는 만들 줄 아시겠죠.
"그럼요. 기본인데요. (웃음)"
▶집에선 누가 요리를 하시나요.
"당연히 집사람이 하죠,하하.제가 결혼하면서 정한 철칙이 있는데요. 집사람이 한 음식에 대해 절대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식사 메뉴는 밥이나 찌개 같은 한식이 주인데 간혹 입에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불평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
▶혹시 자녀들이 아버지를 따라 요리를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 녀석이 한국조리과학고에 들어갔습니다.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을 넘을 만큼 이 분야에선 유명한 학교 중 하나죠.아직 실력은 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해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퇴직하고 나면 부자가 함께 레스토랑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요리사를 꿈꾸는 많은 후학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눈앞의 이익보다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보다 주목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단순히 공부하기 싫어 요리를 하겠다는 태도로는 이 분야에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피에르 가니에르나 토마스 켈러처럼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마에스트로(명인)가 국내에서도 많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좀 더 큰 물에서 성장하고 싶다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 요리학교 등에 유학 가기를 권해주고 싶네요. "
글=이호기/사진=허문찬 기자 hglee@hankyung.com
이때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의 요리사가 손에 든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불을 붙인다. 마치 서커스 쇼의 한 장면처럼 화라락 타오르는 불꽃에도 그의 눈빛은 오히려 고요하기만 하다. 키는 작은데 그의 위생모만 유달리 크고 길쭉하다.
수석 주방장이자 상무인 이민 셰프(47).이 상무는 웨스틴조선호텔에서만 24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2005년 조리사로는 최초로 신세계그룹 임원에 오른 그는 지난 1일 리뉴얼을 단행한 '나인스 게이트'의 총괄 셰프를 맡았다. 호텔 측은 당초 재개장을 앞두고 해외 유명 주방장을 초청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국내 최초의 프랑스식 레스토랑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결국 이 상무를 현업에 복귀시켰다.
▶올해로 요리경력 24년차인데 요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 꿈은 원래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공고에서 기계를 전공하고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했지요. 하지만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급여도 너무 적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혼자 두 동생을 돌봐야 했거든요. 그래서 고심 끝에 포장마차를 시작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술과 음식을 팔면서 요리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
▶ 솜씨가 좋았던 모양이군요.
"사실 손재주가 있다는 얘기를 꽤 들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일하던 중 롯데호텔에 다니던 친구로부터 호텔 요리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경주호텔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조리를 배우기 시작했죠.1986년 실습생으로 호텔에 들어와 6개월 뒤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는데 어느덧 23년이 흘렀네요. "
▶앞으로 어떤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신지.
"기본 바탕은 물론 정통 프랑스 요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식자재를 사용하는 등 한국의 맛을 살려 우리 레스토랑만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곳 셰프로 오기 전에도 조리사업부에서 이 같은 스타일의 메뉴 개발을 담당했어요. 가령 제가 개발한 '갈릭 크러스트 양갈비 요리'에는 양식에 흔히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 절임 대신 우리의 전통음식인 백김치가 들어가도록 하는 식이죠."
▶새로운 메뉴 개발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식자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저만 해도 지금까지 해외로 떠나는 비행기만 100번 넘게 탔습니다. 출장을 가면 꼭 그 지역 특산품과 요리를 직접 경험해 봅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풀코스 정찬으로 12번이나 식사한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나서 또 먹어보곤 했죠.이에 비해 국내에서 우리 고유의 식자재를 발굴하기는 참 어려워요. 사계절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인데도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 그래서 올해는 해외 출장 대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식자재를 발굴해볼 생각입니다. "
▶그렇게 하면 실제 메뉴 개발에 도움이 되나요.
"정보 수집을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음식을 접하게 되면 나중에 돌아와 그대로 한번 만들어 봅니다. 바둑으로 치면 복기라고 할 수 있겠죠.물론 현지에서 웨이터를 불러 향신료 등은 뭘 썼는지 물어보기도 하지만 이제 요리의 형태와 맛을 보면 대충 무슨 재료를 어떻게 썼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
이 상무는 경주호텔학교 외에도 뒤늦게 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해 학사학위를 받았고,2003년에는 연세대 급식경영 석사과정도 졸업한 학구파다. 그는 "요리는 창조적 예술이기 때문에 '컬리너리 아트(요리예술)'라고 한다"며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함께 항상 연구가 필요하고 표현력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요리를 좋아하십니까.
"요리에는 끝이라는 게 없습니다. 재료 한 가지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니까요.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질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어렵죠.각 재료의 궁합을 맞춰야 하고 그에 맞는 소스도 찾아야 합니다. 표현력도 중요합니다. 접시 하나까지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렸다고 우리끼리 말하기도 해요. 음식을 맛있게 먹기보다는 항상 분석적으로 대하는 게 습관처럼 돼 버렸기 때문이죠."
▶어떤 때 요리사로서 보람을 느낍니까.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드시고 찬사를 보내줄 때 가장 즐겁죠.아무리 창조적인 예술작품으로 표현해냈다 해도 결국 최종 판단은 고객이 하니까요.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 때 영부인 만찬과 누리마루 만찬을 맡았을 때 반응이 좋아 나중에 직원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받기도 했죠."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보통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6시30분쯤 집에서 나옵니다. 약 한 시간 뒤 회사에 도착하면 그날 일정을 체크하고 임원회의에 참석하죠.그러고 나서 예약 상황을 살펴본 뒤 점심 준비에 들어갑니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조리 감독 및 서빙을 합니다. 2시부터 4시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는데 팀원들끼리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도 하죠.5시부터는 다시 저녁 영업을 시작해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9시30분~10시까지 일합니다. "
▶업무 시간이 상당한데요. 취미 생활이나 운동은 거의 못하시겠네요.
"건강을 생각해서 퇴근 후 8~10㎞가량을 매일 뜁니다. 토요일에는 집(경기도 안양) 근처 관악산을 오르기도 하고요. 취미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요리에 관한 책이나 영화,만화책 등을 꼬박꼬박 챙겨서 봅니다. 최근 요리를 주제로 한 디즈니 만화영화인 '라따뚜이'를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
▶당연히 라따뚜이(프랑스 전통음식의 하나)는 만들 줄 아시겠죠.
"그럼요. 기본인데요. (웃음)"
▶집에선 누가 요리를 하시나요.
"당연히 집사람이 하죠,하하.제가 결혼하면서 정한 철칙이 있는데요. 집사람이 한 음식에 대해 절대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식사 메뉴는 밥이나 찌개 같은 한식이 주인데 간혹 입에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불평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
▶혹시 자녀들이 아버지를 따라 요리를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 녀석이 한국조리과학고에 들어갔습니다.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을 넘을 만큼 이 분야에선 유명한 학교 중 하나죠.아직 실력은 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해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퇴직하고 나면 부자가 함께 레스토랑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요리사를 꿈꾸는 많은 후학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눈앞의 이익보다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보다 주목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단순히 공부하기 싫어 요리를 하겠다는 태도로는 이 분야에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피에르 가니에르나 토마스 켈러처럼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마에스트로(명인)가 국내에서도 많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좀 더 큰 물에서 성장하고 싶다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 요리학교 등에 유학 가기를 권해주고 싶네요. "
글=이호기/사진=허문찬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