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에는 '동백 아가씨'를 부르는 지성인이 있으면 질 낮은 사람이라고 깔보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는 서구풍 리듬이 유행할 때여서 제 노래는 무조건 촌스럽고 저 또한 촌스러운 가수로 못박혔거든요. 발라드 같은 서구풍 노래로 바꿔볼까 하는 유혹에도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가요의 뿌리를 지켜왔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엘레지의 여왕' 가수 이미자씨(67)는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의 팬들이 많이 사랑해 주셨기에 오늘날의 이미자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는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신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비롯 히트곡과 옛 가요 명곡을 담은 기념 음반 '이미자 50년,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101곡'을 발표하고,오는 4월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전주 목포 광주 부산 성남 등 전국에서 9개월간 '이미자 50년,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전국투어콘서트'를 연다. 이씨는 "우리 가요의 뿌리를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념 음반에 전통 가요 30곡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100여곡에 달하는 가요 사상 최다 취입을 기록하며 5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가수로 자리잡았다. 1958년 여고생 신분으로 서울 종로 2가 HLKZ방송 노래자랑 프로그램 '예능 로터리'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고,이듬해인 1959년 겨울 응접실 벽을 헐어내고 두겹 유리창을 붙여 만든 초라한 간이 녹음실에서 녹음한 '열아홉 순정'으로 단숨에 신예 스타가 됐다.

19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는 음반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판을 찍고 또 찍어냈다. 지방 공연이 겹쳐 한번도 제대로 노래 연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녹음해 1965년 발표한 '흑산도 아가씨'에 이어 1966년 '섬마을 선생님'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씨 스스로 '3대 히트곡'으로 꼽는 '동백 아가씨''섬마을 선생님''기러기 아빠'는 모두 발표 몇 년 만에 방송금지곡이 됐다. 그의 성공을 시기한 몇몇 음반사가 '왜색'이니 '경제 개발 분위기에 역행하는 비탄조 노래'라는 비방 투서를 쏟아낸 탓이다. 절망한 이씨는 "더 이상 노래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노래를 그만두려고 했다"고 당시의 비통함을 표현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나름의 '투쟁'에 나섰다. 청와대에 불려가 노래할 때마다 이 금지곡들을 대통령 앞에서 불렀다.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도 이 노래들을 불렀는데,대통령은 내가 부르는 노래가 금지곡인지 잘 모르는 듯했어요. "이 곡들은 1987년에야 금지곡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이씨는 후배 가수들에 대해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 게 요즘 대중가요의 유행인 것 같다"고 지적한 뒤 "노래라면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음을 정확하게 내는 '정석'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가요의 가사나 곡은 모두 흥을 위주로 하는 것 같아요. 가슴 아프고 울고 싶은 일도 많은 시대에 기쁨뿐 아니라 아픔까지 전하며 마음에 와닿는 노래를 많이 불러주기 바랍니다. "

글=이고운 기자/사진=한경닷컴 양지웅 인턴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