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제통화기금의 영문 약자인 IMF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지난 1997년 IMF구제금융이라는 치욕과 그로 인한 홍역을 치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불황을 의미하는 'depression'이라는 단어가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황'(depression)이라는 단어는 지난주 고든 브라운 영국수상이 사용한데 이어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스트로스 칸 총재는 지난 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시아 15개국 중앙은행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의 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선진 경제권이 '불황'에 빠졌다고 말했다.

칸 총재는 또 "IMF가 세계 경제성장률을 더 낮출 수도 있다"며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든 브라운 영국 수상도 지난주 보수당 당수와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세계 경제상황을 표현하면서 '불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발언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수상실에서는 브라운 수상의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으며 당초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불황이라는 낱말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단어가 지난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칸 총재의 발언이 지금까지 세계 경제상황에 대해 주요 정치 인사가 한 발언으로는 가장 암울한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보통 '불황'이라고 하면 1930년대의 '대공황'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피해왔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도 8일 ABC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공황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경제 상황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스트로스 칸 총재가 제시한 것처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데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특히 극심한 경제후퇴의 영향으로 1930년대처럼 국제정치에도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정부의 한 각료는 "현재의 경제후퇴가 100년만에 가장 심각한 세계적 후퇴"라며 "특히 세계 곳곳에서 파시즘이 등장했던 1930년대 대공황시기와 유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차기태 기자 ram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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