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樂山 백두대간 종주하며 텐트속 칼잠자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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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水 신입사원 뽑을땐 알몸 목욕에 술버릇까지 살펴
해병대식 압박 경영, 경영은 물처럼 투명해야
해병대식 압박 경영, 경영은 물처럼 투명해야
2007년 8월 말 태백산 천제단.3일 내내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산을 타던 코리안리 직원 100여명이 배낭에서 군용도시락 '뜨시락'을 꺼냈다. 밥을 빗물과 함께 비벼 싹싹 비워냈다.
고생스러웠지만 불평 불만 대신 웃음소리가 나왔다. 그날 밤 야영지엔 밤새 폭우가 내렸다. 젊은 남자 직원들이 텐트에서 뛰쳐나왔다.
어둠 속에서 온몸에 비누칠을 한 뒤 장대 같은 빗줄기에 몸을 맡기고 들뜬 표정으로 '천연 샤워'를 즐겼다. 이를 보며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었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이었다.
"직원들 근성이 깨어났구나. 저런 인내력과 도전정신을 갖춘 직원들과라면 어떤 일을 해도 제대로 할 수 있겠다. "
공기업으로 출발한 대한재보험이 박 사장의 지휘 아래 코리안리로 거듭나며 세계 28위에서 세계 11위 재보험사,아시아 1위 재보험사로 탄생한 신화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월남전 당시 해병대 훈련,1970~80년대 재무부에서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똘똘 뭉친 근성과 도전정신 등 박 사장의 스타일이 회사에 성공적으로 이식된 결과다.
◆해병대 정신으로 기업문화를 바꾸다
"0%가 올해 목표입니다. "
1999년 새해 사업계획 보고를 받던 박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해상보험부 등 대부분 부서가 경제가 어렵다며 0% 성장을 목표라고 가져왔다. 오랫동안 공기업으로,경쟁이 없는 시장에서 지내온 탓에 조직 구석구석에 '무사안일주의'가 침투해 있었던 것.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듯,기업을 바꾸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
박 사장의 도전 의식이 끓어올랐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 겨울,대학 2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자원했던 그다. 영하 15도 빙판을 깨고 들어가 앉아있는 게 가장 편했던 해병대 상남보병훈련대….스물세살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코리안리 재탄생의 시작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신감과 긍정적 시각을 되찾아주기 위해 해병대식 압박경영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전직원 백두대간 종주다. 처음엔 '설마 할까'란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박 사장은 적당히 홍보용 '이벤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2004년 지리산 31㎞(노고단-형제봉-세석-장터목-천왕봉)를 시작으로 2005년 덕유산,2006년 소백산,2007년 태백산,2008년 오대산을 넘었다.
올해 설악산을 종주하며 250㎞의 대장정을 끝마친다. 매년 8월 말 종주에 나서면 2박3일간 30시간 이상 걷는다. 점심은 간이식량으로 때우고 밤에는 텐트 속에서 칼잠을 자야 한다.
등반이 거듭될수록 '할 수 있다'는 정신이 확산됐다. 코리안리는 1999년부터 매년 13% 이상 성장하고 있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당기순이익은 4581억원으로 1963년 창립 이후 1998년까지 36년간 올린 827억원의 5.5배에 달한다. 코리안리 직원들은 "한계를 극복하고 나니 이제 매년 10% 성장은 기본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박 사장은 재무부 출신(행시14회)이다. 그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1970년대 재무부 관료들은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경쟁도 치열했다.
업무량이 폭주해 야근을 밥먹듯 하면서도 일을 동료들과 나누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라도 더 하려 경쟁했다.
당시 박 사장은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배낭에 담아 산에 버리고 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일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진 재무부 산악반장을 지내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함께 산을 탔다.
◆할 말은 하는 경영
박 사장의 최대 장점은 투명경영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그의 스타일이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인사는 희망 부서를 미리 받아 이를 토대로 투명하게 실시한다. 순환보직제도를 도입,부서간 이기주의 벽을 허물었다. 노조 간부를 임원회의에 참석시키고 전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임원회의에 들어가도록 했다. '쉬쉬'하는 공기업 문화를 잠재우기 위한 처방이다.
매년 '성공사례 보고 대회'가 아닌 '실패사례 보고 대회'를 연다. 가장 솔직하게 실수 사례를 공개하는 부서엔 포상을 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그래야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신입사원 채용 방식도 독특하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2배수를 선발한 뒤 하룻동안 '야외면접'을 한다. 새벽 7시부터 등산과 축구,오래달리기,목욕,저녁식사 겸 술자리까지 15시간을 직원들과 함께 보내 인성부터 술버릇까지 테스트하도록 했다.
박 사장은 대주주인 원혁희 회장과 굳건한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회사 경영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임원인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두 개의 목소리가 나오면 회사내에 혼란이 생긴다"며 "그런 회사들은 결국 망했다"고 말한다.
대주주와 확실한 선을 긋는 경영을 했는데도 그는 지난해 4연임에 성공하며 11년째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이뤄낸 경영실적에다 그가 주창해온 투명경영이 기업 문화로 뿌리를 내린 덕이다.
이제 그의 도전은 세계를 향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중동 등을 공략해 해외 매출 비중을 1998년 4.2%에서 지난해 20% 가까이 높였다. 1999년 '비전 2020'을 통해 2010년까지 글로벌 10위 재보험사가 되겠다던 희망을 이뤄냈다. 다음 목표는 2020년까지 세계 재보험 5위권에 진입하는 것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고생스러웠지만 불평 불만 대신 웃음소리가 나왔다. 그날 밤 야영지엔 밤새 폭우가 내렸다. 젊은 남자 직원들이 텐트에서 뛰쳐나왔다.
어둠 속에서 온몸에 비누칠을 한 뒤 장대 같은 빗줄기에 몸을 맡기고 들뜬 표정으로 '천연 샤워'를 즐겼다. 이를 보며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었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이었다.
"직원들 근성이 깨어났구나. 저런 인내력과 도전정신을 갖춘 직원들과라면 어떤 일을 해도 제대로 할 수 있겠다. "
공기업으로 출발한 대한재보험이 박 사장의 지휘 아래 코리안리로 거듭나며 세계 28위에서 세계 11위 재보험사,아시아 1위 재보험사로 탄생한 신화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월남전 당시 해병대 훈련,1970~80년대 재무부에서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똘똘 뭉친 근성과 도전정신 등 박 사장의 스타일이 회사에 성공적으로 이식된 결과다.
◆해병대 정신으로 기업문화를 바꾸다
"0%가 올해 목표입니다. "
1999년 새해 사업계획 보고를 받던 박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해상보험부 등 대부분 부서가 경제가 어렵다며 0% 성장을 목표라고 가져왔다. 오랫동안 공기업으로,경쟁이 없는 시장에서 지내온 탓에 조직 구석구석에 '무사안일주의'가 침투해 있었던 것.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듯,기업을 바꾸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
박 사장의 도전 의식이 끓어올랐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 겨울,대학 2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자원했던 그다. 영하 15도 빙판을 깨고 들어가 앉아있는 게 가장 편했던 해병대 상남보병훈련대….스물세살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코리안리 재탄생의 시작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신감과 긍정적 시각을 되찾아주기 위해 해병대식 압박경영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전직원 백두대간 종주다. 처음엔 '설마 할까'란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박 사장은 적당히 홍보용 '이벤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2004년 지리산 31㎞(노고단-형제봉-세석-장터목-천왕봉)를 시작으로 2005년 덕유산,2006년 소백산,2007년 태백산,2008년 오대산을 넘었다.
올해 설악산을 종주하며 250㎞의 대장정을 끝마친다. 매년 8월 말 종주에 나서면 2박3일간 30시간 이상 걷는다. 점심은 간이식량으로 때우고 밤에는 텐트 속에서 칼잠을 자야 한다.
등반이 거듭될수록 '할 수 있다'는 정신이 확산됐다. 코리안리는 1999년부터 매년 13% 이상 성장하고 있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당기순이익은 4581억원으로 1963년 창립 이후 1998년까지 36년간 올린 827억원의 5.5배에 달한다. 코리안리 직원들은 "한계를 극복하고 나니 이제 매년 10% 성장은 기본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박 사장은 재무부 출신(행시14회)이다. 그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1970년대 재무부 관료들은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경쟁도 치열했다.
업무량이 폭주해 야근을 밥먹듯 하면서도 일을 동료들과 나누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라도 더 하려 경쟁했다.
당시 박 사장은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배낭에 담아 산에 버리고 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일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진 재무부 산악반장을 지내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함께 산을 탔다.
◆할 말은 하는 경영
박 사장의 최대 장점은 투명경영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그의 스타일이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인사는 희망 부서를 미리 받아 이를 토대로 투명하게 실시한다. 순환보직제도를 도입,부서간 이기주의 벽을 허물었다. 노조 간부를 임원회의에 참석시키고 전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임원회의에 들어가도록 했다. '쉬쉬'하는 공기업 문화를 잠재우기 위한 처방이다.
매년 '성공사례 보고 대회'가 아닌 '실패사례 보고 대회'를 연다. 가장 솔직하게 실수 사례를 공개하는 부서엔 포상을 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그래야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신입사원 채용 방식도 독특하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2배수를 선발한 뒤 하룻동안 '야외면접'을 한다. 새벽 7시부터 등산과 축구,오래달리기,목욕,저녁식사 겸 술자리까지 15시간을 직원들과 함께 보내 인성부터 술버릇까지 테스트하도록 했다.
박 사장은 대주주인 원혁희 회장과 굳건한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회사 경영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임원인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두 개의 목소리가 나오면 회사내에 혼란이 생긴다"며 "그런 회사들은 결국 망했다"고 말한다.
대주주와 확실한 선을 긋는 경영을 했는데도 그는 지난해 4연임에 성공하며 11년째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이뤄낸 경영실적에다 그가 주창해온 투명경영이 기업 문화로 뿌리를 내린 덕이다.
이제 그의 도전은 세계를 향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중동 등을 공략해 해외 매출 비중을 1998년 4.2%에서 지난해 20% 가까이 높였다. 1999년 '비전 2020'을 통해 2010년까지 글로벌 10위 재보험사가 되겠다던 희망을 이뤄냈다. 다음 목표는 2020년까지 세계 재보험 5위권에 진입하는 것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