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첫 직장으로 석유 탐사를 하는 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하던 때가 떠오른다. 필자가 속한 팀에는 기계를 직접 만지고 관리하며 업무를 지원해주는 오퍼레이터가 있었는데,신입사원들도 해당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연구만 하는 엔지니어와 달리 손과 옷이 더러워지는 업무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다른 분야의 일까지 굳이 해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기계를 다뤄보니 옆에서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필자는 그때부터 '손을 더럽혀라(Make your hands dirty)'는 말처럼 경험을 최고의 자산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3D란 말이 있듯이 우리는 직업,업무에 대한 구분과 가치 판단을 많이 하는 편이다. 수준이 낮다는 편견에,시간 낭비란 생각에 또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대단해 보이지 않아 그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보게 된다. 하지만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밑바닥에서부터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경험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리더에게도 필수다. 구성원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인데,다양한 업무를 직접 경험해보면 누가 어느 곳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온라인쇼핑을 통해 전자제품,생필품뿐만 아니라 생선까지 다양한 상품을 직접 구매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어 아무리 바빠도 물건을 직접 사고 서비스를 이용한다. 쇼핑을 하다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기 때문에 몇몇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필자를 가장 까다로운 고객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무자들의 보고를 받는 것으로 현황을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영업사원,서비스센터 상담원 등 다양한 역할을 상상하고 직접 수행해 보는 과정이 공학도였던 필자에게는 마케팅 이론을 아는 것 못지않게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객이 불편했던 점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업무환경 등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직접 손을 내밀어 잡아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손이 좀 더럽혀지면 어떠랴,경험하지 못하면 알기 어려운 문제점을 볼 수 있고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일회성 체험이 아닌 낮은 곳에서부터 진정으로 경험해보는 것.그것이 바로 프로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