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10일 최대 2조달러 규모의 금융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미 상원은 838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상원과 하원은 별도의 협의를 거쳐 최종 경기부양법안을 마련하게 된다. 하원이 통과시킨 경기부양법안의 규모는 8190억달러다. 하지만 다우지수가 4.6% 폭락하는 등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첫 작품인 금융안정대책은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월가,"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이번 금융안정대책의 주요 내용은 1조달러 규모의 민 · 관펀드를 조성해 금융사 부실자산을 사주고,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대 1조달러를 풀어 기업과 소비자 대출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금융사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기업과 가계에 돈이 돌게 하며,주택시장을 안정시켜 금융불안의 뿌리를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CNBC가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65% 이상의 응답자가 이번 조치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반응을 보이는 등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천문학적인 자금조달 방안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가이트너 장관은 이날 구제안 발표 후 의회에 출석,재원조달 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구제안 집행에 필요한 돈은) 민간부문의 참여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등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자금 소요를 확정할 수 없다"며 "필요할 경우 추가로 의회에 자금승인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선 이를 금융권 구제에 얼마나 자금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정부가 은행에 신규 자본을 어느 정도 투입하고,자본 투입에 따른 조건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뚜렷이 밝히지 않은 점도 불안심리를 초래했다. 은행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면 주가 희석으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파생상품이나 장부외 자산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가이트너 장관은 밝히지 않았다. 민간 자본을 유치해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방안도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민간자본이 낮은 가격을 요구하게 되면 은행들이 부실 자산을 팔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도 은행이 부실자산을 털어내긴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며 씨티그룹 등 은행주가 급락했다. 데이비드 엘리슨 FBR펀드의 최고투자경영자(CIO)는 "시장은 묘약이 나오길 기대했는데,금융부실을 해결하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란 사실만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이트너,백악관 보좌진과 의견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의 부정적인 반응을 비판했다. 그는 "월가가 쉬운 탈출구를 찾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그런 탈출구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금융시장이 안정되려면 1년이나 2년 걸릴 수 있다"면서 "일본의 경우 8년 걸렸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또 이날 ABC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와 경제보좌관들이 (부실) 은행들을 효과적으로 국유화해야 할지 여부를 검토했으나 국유화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들의 숫자와 경제규모,민간자본이 핵심적인 투자수요를 충족시켜 온 미국의 강력한 전통 등을 감안하면 정부가 국유화 시스템을 관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백악관 보좌진은 금융안정대책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액슬로드 백악관 고문 등 백악관 보좌진이 정부가 지원한 금융사의 경영진을 교체하는 한편 감자 등을 통해 기존 주주들의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가이트너가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뉴욕=이익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