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의 ML63 AMG는 멋진 차였다. 충분히 고급스러우면서 실용적인 5인승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였다. 복잡하지 않은 도심 외곽에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겐 최고가 될 수 있을 듯 싶었다. 벤츠가 자랑하는 고성능 AMG 엔진을 장착한 M클래스의 최고급 모델답게 거침없이 내달렸으며 주행 안정성도 뛰어났다. 외관은 차 후미에 붙은 AMG 표시를 제외하면 다른 M클래스와 다를 게 없었다. 유럽차답게 다소 무겁고 투박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세련미가 배어났다. 실내 디자인 역시 그다지 튀지 않았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 애써 자랑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내공'이 묻어나는 그런 차였다.

시동을 걸었더니 6209cc 초대형 엔진으로부터 묵직한 시동음이 전해졌다. 신호만 주면 곧바로 내달릴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속페달을 밟자 고성능 8기통 AMG 엔진은 괴력을 발휘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내 주행에서는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했고 뻥 뚫린 고속도로에선 거칠 게 없었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초대로 웬만한 스포츠카를 능가한다는 벤츠코리아의 설명 그대로였다.

7단 자동변속기는 S(스포츠) C(컴포트) M(매뉴얼) 등 3가지 변속 모드를 지원,운전자 취향이나 상황에 따라 속도감과 편안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했다. SUV이지만 운전대에 변속장치를 달아 매뉴얼 모드에서 손쉬운 기어변환이 가능하도록 한 점도 돋보였다.

주행 안정성도 뛰어났다. 꼬불꼬불 산길이나 고속 급회전 때도 효율적인 바퀴 제어를 통해 차가 스스로 균형을 찾았고 비포장 험로에서는 오프로드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운전이 한결 편해졌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주행할 때는 다운힐 스피트 레귤레이션 기능이 큰 도움을 줬다. 4~18㎞/h 사이에서 특정 속도를 지정했더니 그 속도로 주행이 이뤄져 브레이크를 자주 밟을 필요가 없었다. 또 에어서스펜션 시스템인 에어매틱은 속도를 감지한 뒤 자동으로 차량 높이를 조절해줬다.

탑승자 안전을 위한 배려도 상당했다. 프레임 보강 등을 통해 충격 흡수 기능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벤츠 고유의 프리세이프 시스템은 주행상황을 모니터링한 뒤 계기판에 위험상황을 미리 경고했다. 필요할 경우 탑승자 안전벨트를 팽팽하게 당겨주고 선루프를 닫아주는 등 예방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고 회사 측은 소개했다. 첨단 목받침대(헤드레스트)도 순간적으로 이동하며 충돌 때 목 부상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승차감도 SUV답지 않게 뛰어나다는 의견이 많았다. 동승자들은 대부분 에어서스펜션 덕분인지 뒷좌석이 웬만한 고급 세단 이상의 승차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고성능 엔진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그래도 연비는 아쉬웠다. 공인 연비가 5.2㎞/ℓ지만 시내 주행에선 연료 1ℓ로 4㎞ 남짓 달릴 뿐이었다. 막히는 시내를 출퇴근하는 차량으로는 부적합했다. 그나마 막히지 않는 도로에선 공인 연비 이상을 달린다는 게 위안이었다. 또 다른 옥에 티는 설계상의 하자인지,한국인의 신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부분적으로 창틀에 막혀 시야에 사각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이드 미러 사이즈가 다소 작아 보였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