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증시에서 선물 가격이 현물인 주식의 가격 흐름을 좌우하는 '왝더독'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선물 시장을 장악한 외국인의 움직임에 따라 주식에서 프로그램 매매가 갈짓자(之) 행보를 보여 코스피지수가 휘둘리고 있다.

꼬리(선물)가 몸통(현물)을 흔든다는 얘기다.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이 매수 주체로 나서기는 버거운 상황이어서 선물 매매 방향에 따라 지수가 출렁이는 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식 수급구조 취약 탓

13일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이 나흘째 순매도에 나선 영향으로 장 초반엔 1165까지 밀렸으나 낮 12시를 앞두고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대규모 순매수로 돌아서면서 상승세로 반전,12.60포인트(1.07%) 오른 1192.44로 마감했다.

선물 매수세 유입으로 현 · 선물 가격차인 베이시스가 확대되자 프로그램 차익매수(고평가된 선물을 팔고 현물 주식을 사는 것)가 늘어나며 코스피지수를 밀어올렸다.

이로써 주가는 5일 만에 반등했지만 장중에 27포인트 이상 출렁이는 널뛰기 장세가 펼쳐졌다.

외국인의 선물 매매가 장중 지수 움직임을 쥐락펴락하는 현상은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전날에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져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6000계약 이상 순매도하는 바람에 베이시스가 악화돼 프로그램 차익 순매도가 5200억원이나 됐다.

지난 5일에도 선물 매매 방향에 따라 장중 지수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외국인 외에 뚜렷한 매수 주체가 없어 거래대금이 바짝 쪼그라진 탓이란 분석이다.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지난해 10월 5조8000억원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져 지난달에는 4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9일부터 5일 연속 4조원대에서 정체 중이다.

이처럼 현물 시장을 지탱해줄 세력이 부족하자 선물 움직임에 지수가 쉽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박문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외에는 지속 가능한 매수 대안이 없는 데다 프로그램 차익매수 역시 외국인의 선물 매수가 뒷받침돼야만 재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어 선물이 현물시장을 움직이는 장세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투신권이 자금 여력 부족으로 현물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지 못한 것도 원인이란 분석이다.

◆주가 변동성 커질 듯

증시 분석가들은 이 같은 '왝더독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외국인이 매매 방향을 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는 미국 증시도 최근 부쩍 변동성이 커져 국내 선물시장에서 이들이 냉 · 온탕을 오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선물시장에서 외국인이 글로벌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며칠간 연속 순매수하다가도 미국 금융시장이 불안 조짐을 보이면 즉시 팔자로 돌아서기 때문에 방향성 예측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심상범 대우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요즘 선물시장에서 외국인의 매수 · 매도 주기가 무척 짧아졌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심지어 장중에도 순매수와 순매도를 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 위원은 "프로그램 매수차익 잔액이 최소 2조원 이상으로 풍부한 수준이어서 언제라도 현물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지수는 박스권에 갇혀 지지부진한 반면 장중 변동폭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정책 이슈가 일단락된 탓에 돌발 변수가 없으면 당분간 지수가 1100에서 1200 사이를 오가는 횡보장이 예상된다"며 "반면 장중에는 선물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지수가 출렁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