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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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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선 <국회의원 yscho2008@hanmail.net>
    지난 금요일 안성에 다녀왔다. 몇 년 동안 병원신세를 지셨던 작은 외할머니께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맏형이셨고,안성 작은 할아버지는 삼남이셨다. 슬하에 아들 다섯,딸 하나를 두셨다. 손자 셋에 손녀 아홉이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증손녀도 하나 있다. 올해로 할아버지는 아흔 둘,할머니는 아흔 하나 되셨고,두 분이 60년 이상 해로했으니 요즘 보기 드물게 다복한 분이셨다.

    두 분은 서울에 자주 올라오셨다. 봄이면 덕수궁 미술관에 국전을 보러 오셨고,때때로 특별한 전시회가 있어도 올라오셨다. "너도 가자" 하시면 나도 두 분을 따라 나섰다.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에서 몇 년을 보내셨는 데도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곁에서 수발을 든다는 얘기를 자주 전해 들었다. 하루를 거르기는커녕,어떤 날은 두 번도 가신다고 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면 "왜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느냐"며 원망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자상하셨고 할머니는 호방하셨다. 환갑이 훨씬 넘었을 때 두 분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두 분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다니니 주변 분들이 참 보기 좋다고 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매일 같이 할아버지를 따라 나서 자전거 타시느라 그만 무리를 해서 자리에 누웠다는 소식이 어느 해인가 명절날 화젯거리가 됐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도 참 듣기 좋았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계시지 않았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장면부터 두 분은 언제나 함께 계셨었는데….밤이 많이 늦었지만,올라오는 길에 할아버지 댁에 들렀다. 절을 받은 할아버지는 이내 할머니 말씀을 하셨다. "나도 이제 곧 따라 가야지.할머니 편히 보냈으니 이제 할 일도 다 했고…" 할아버지 말씀에는 절망이나 포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하루가 가는구나…' 하시는 듯 담담했다.

    "자전거를 한참 타고 나서는 80㏄짜리 스쿠터 두 대를 월부로 사서 신나게 탔지.그 스쿠터로 안성을 떠나 막내아들 내외가 사는 부산까지 간 적이 있어.대구까지는 갔는데,시내가 하도 복잡해서 길을 물어봤더니,그걸 타고 어떻게 부산까지 가느냐며 놀라더라고.안성에서 대구까지 갔는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자제들로부터 칠순 선물로 빨간 프라이드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옆에 태우고 정말 전국을 안 다닌 데가 없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거동을 못하게 되자 휠체어까지 싣고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다니셨던 추억을 끝으로,할아버지는 두 분이 함께 한 긴 세월을 반추했다.

    두 분,참 화목하셨다는 말씀에 할아버지는 "그래.같이 산 지 올해로 67년이네.참 잘 살았어.그게 꼭 사랑이라기보다는….그냥 둘이 뭐든지 같이 했지"라고 하셨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반려였던 할아버지 내외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흑백 활동사진처럼 참 애잔한 잔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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