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1300원 이하,하반기 1100원대.'지난달 초만 해도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원 · 달러 환율과 관련,'상고하저(上高下低)'의 흐름을 보일 것이라면서 올 연말에는 1150원 안팎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금융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고 미국의 경기부양책이 달러 약세를 부추길 것이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화 약세(환율 상승)를 완화시킬 것이란 점에서였다. 그러나 실제 국내외 경제 상황이 이와 상반된 흐름을 보이면서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 불안 계속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해 현금을 확보하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새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환율 상승의 일차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이들 금융회사의 자금 회수로 국제 금융시장의 차입 여건이 악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한국 등 개도국의 경우 외화자금 사정이 다시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로 환율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에 이어 영국 등 유럽 금융회사들의 자금 회수가 본격화되면서 동유럽 국가의 부도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지불 유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선진국 은행의 유동성이 살아나지 않으면 국내 은행들은 상환 능력과 상관없이 외화 차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환율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달러 정책도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위안화에 대해서는 절상 압력을 넣어 달러 약세 정책을 펴는 반면 그밖의 국가에 대해서는 달러 강세 정책을 펴고 있어 위안화를 제외한 각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위협,경상수지 적자 등 악재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과 함께 대내적인 불안도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우선 당초 예상과 달리 경상수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수출이 사상 최대 폭인 32.8%나 감소하면서 무역수지는 29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이달 들어서도 지난 10일까지 6억달러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경상수지가 20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면서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당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더구나 환율이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자 수출 업체들이 낮은 환율에서는 환전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마저 나타나면서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김두현 외환은행 차장은 "지난달만 해도 수출 업체들이 달러를 꾸준히 내다 팔아 환율 상승세를 막는 역할을 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일정 가격이 되지 않으면 달러를 내놓지 않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그는 "수출 부진으로 달러 매도 물량이 부족한 가운데 수출업체들은 그나마 있는 달러도 1400~1420원은 돼야 내놓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 준비에 돌입하는 등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심리적인 요인까지 작용하고 있다. 불안 심리에 따라 금과 달러를 사 두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1500원 이상" 극단적 전망도

김두현 차장은 "선진국의 경기부양책이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실망감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라며 "서울 외환시장의 경우 달러수요 우위 상황을 전환시킬 뚜렷한 재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 환율이 최고 144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은 "경기지표,기업 실적 등 어느 것을 봐도 호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며 "어쩌면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는 당초의 전망 자체가 크게 잘못됐던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마지노선이라고 여겼던 1400원 선이 뚫린 상황에서는 앞으로 환율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외환시장의 수급 상황과 경제의 펀더멘털을 고려했을 때는 일시적으로 달러당 1500원을 넘어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승호 기자/한상춘 객원논설위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