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은 질환이 아니잖아.내게 멋진 진단명을 지어줘 봐."

87세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종합병원'을 방불케하는 다양한 노인성 질환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치의인 정인식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에게 이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17일 김 추기경을 치료해온 이 병원 의료진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에 류머티스관절염,전립선비대증,과민성 방광,약간의 고혈당,변비 등의 질환을 갖고 있었다.

류머티스관절염은 평소 세례와 악수 등으로 손을 많이 쓰느라 발병한 것 같다는 게 김호연 류머티스내과 교수의 설명이다.

나이든 남성에게 생기기 쉬운 전립선비대증은 발병 초기 몇년간은 약으로 어느 정도 치료됐으나 1년 전부터는 과민성 방광까지 겹쳐 선종 전 약 4개월간은 카테터에 의지해 소변을 봐야 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배뇨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카테터를 쓰기 전까지 넉달 동안은 통증을 참고 스스로 소변을 봤다고 한태곤 비뇨기과 교수(병원장)는 전했다.

선종 수개월 전부터는 식사가 곤란해 죽 국물 수프 등 유동식과 함께 쇄골하 정맥으로 영양분을 주사하는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보통 사람의 경우 쇄골에 설치한 영양분 주입구가 2~4주면 오염돼 새로 교체해야 하지만 추기경은 선종 전 6개월 동안 한 번 설치한 주입구를 끝까지 사용할 정도로 정갈했다는 것이 간호사들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김 추기경께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하늘을 몇분간 응시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순수함을 느꼈다"고 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