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정치권과 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과 맺은 인연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17일 빈소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유명 문인들은 김 추기경과의 특별한 추억을 회고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1970년대 현대건설 부사장 시절 근로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우면서 김 추기경에게 병원을 위탁관리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병원은 1975년 현대조선 부속병원으로 문을 연 해성병원(현 울산대병원).이 대통령은 그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서울시장 시절 김 추기경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자주 찾았고,김 추기경은 청계천 복원사업 등 여러 현안에 대해 자문과 기도를 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승수 국무총리는 평소 김 추기경을 '정신적 아버지'로 모셨다고 회고했다.

한 총리는 총리 취임 직전까지 김 추기경의 아호를 따 만든 '옹기장학회'의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김 추기경의 건강이 악화되자 부인 홍소자 여사와 함께 자주 병문안을 갔다.

국회 가톨릭신자의원모임 회장인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은 1970년께 고교 동문회에서 김 추기경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후 매년 고교 동문들과 김 추기경에게 세배하러 갔는 데 해마다 5000원을 주다 2000년께에는 1만원으로 올려줬다. 고 의원이 새뱃돈 금액이 오른 이유를 묻자 김 추기경은 "최근 물가가 너무 올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소속인 문희상 국회부의장도 각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독실한 불교집안 출신인 문 부의장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40일간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똑같이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로 합수부에 끌려와 조사를 받던 한 가톨릭 신부로부터 종교적인 감화를 받고 감방 안에서 화장실 물로 영세를 받았다.

문 부의장은 "김 추기경께선 만날 때마다 예전에 화장실 물로 영세했던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김근태 전 의원의 경우 종교가 없지만 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김 추기경과 인연을 맺게 됐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부인 인재근 여사와 함께 미국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투옥 중이었기 때문에 인 여사만 상을 받았는데 당시 김 추기경이 가톨릭회관을 시상식 장소로 내주고 현장에 나와 축하를 해줬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경우 김 추기경과 40년에 걸친 인연을 맺어왔다. 이 총재는 40년 전 혜화동 성당에 다니던 시절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나 깊게 교류했고,김 추기경은 이 총재의 부친과도 가까운 사이다.

문학계 인사들도 김 추기경과의 '남모르는 사연'을 나눴다. 김지하 시인의 경우 김 추기경이 결혼식 주례를 직접 섰다.

김씨는 <오적>으로 필화사건을 겪고 2년 만인 1972년 가톨릭계 잡지 《창조》에 담시 <비어>를 실어 다시 체포된 뒤 마산의 국립결핵요양원에 연금됐다.

이때 김 추기경이 찾아와 마산교구청에서 함께 밤을 보내며 첫 인연을 맺었다. 이렇게 맺은 인연이 추기경의 주례로 이어졌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2004년 출간된 고인의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 · 평화신문 펴냄)에서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으로 추천사를 실었다.

박씨는 이 글에서 발레 공연에 함께 초청받아 추기경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톨릭의 가장 우두머리인 추기경님이시니,권위 부릴 수 있는 건 다 갖춘 어른이 어쩌면 저렇게 어린애처럼 천친하고 가벼워 보일 수가 있을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호승 시인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2004년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에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