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이다. 그런데도 달러화는 전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다. 일본 경제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12.7%까지 떨어졌을 정도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그러나 엔화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 틈에서 원화 가치는 추락(환율 상승)을 거듭해 원 · 달러 환율은 17일 1455원50전까지 올랐다. 전날보다 28원이나 오르면서 2개월여 만에 1450원대에 진입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외환시장 3대 궁금점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근의 달러 및 엔화의 강세와 원화의 약세에 대해'외환시장의 3대 미스터리'라며 이 같은 현상이 올 상반기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융위기 속 기축통화 위상 강화

달러 강세는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력이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64.6%가 달러이고 세계 무역의 45%가 달러를 통해 이뤄진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각국 금융기관은 달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는데 달러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으니 달러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제2의 국제통화 지역인 유로존이 미국보다 더 심각한 경기침체를 맞고 있다는 점도 달러 강세 요인이다. 유로존은 미국보다 한 분기 앞선 지난해 2분기부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4분기 성장률도 -5.9%로 미국(-3.8%)보다 낮았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국제 결제용 자금이나 대외준비자산 확보를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를 사 두려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강세는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금리의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마감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엔화는 글로벌 달러 강세와 일본의 심각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간 달러에 대해서는 20.9%,유로에 대해서는 36.7% 각각 상승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3월 결산을 앞두고 일본계 금융기관들이 세계 각국에 투자한 위험자산을 청산하고 자금을 일본 국내로 돌리고 있는 것이 엔화 강세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 단기외채 부담에 수출까지 부진

최근의 환율 상승은 달러 강세를 낳은 대외적인 요인에 국내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국내 은행의 외화자금 사정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았다. 올 들어 17일까지 국책 및 시중은행들이 88억4000만달러의 외화를 조달했지만 연말까지 18개 시중은행이 갚아야 할 단기 외화채무는 400억달러에 이른다.

수출을 통한 달러 공급도 여의치 않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흑자로 돌아서는가 싶었던 무역수지는 지난달 다시 33억6000만달러의 대규모 적자를 내 외환시장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은 "최근의 환율 급등세에 놀라는 사람이 많지만 환율이 떨어질 만한 요인은 무엇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점치기 어려운 장세"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기존에 맺어 둔 외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 규모를 확대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는 등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해야 하고 은행권의 해외 차입을 지원해 환율 불안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각국의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와 대규모 경기부양 효과 등으로 하반기에는 금융불안이 진정되고 국내 금융권의 외화조달 여건이 개선되면서 원화가 지나친 약세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반기 원화 환율은 달러당 1200원 이하,100엔당 1300원 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각각 예상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