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청에서 기능직 공무원 안모씨(38)가 26억원의 장애인 수당을 횡령한 사건과 관련,복지예산 집행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복지 예산을 아무리 많이 내려보내도 시 · 군 · 구 단위의 말단 공무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횡령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안씨가 2005년 5월부터 40개월간 26억4400만원을 횡령한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장애인 1300여명에게 줄 장애인 수당을 실제보다 부풀려 서울시에 신청한 뒤 차액을 차명 계좌로 이체했다. 72차례에 걸쳐 매달 지급돼야 할 액수(1억3000만~1억6000만원)보다 1000만~6000만원을 더 신청해 이 돈을 가족 명의 계좌에 입금했다.

40개월에 걸쳐 안씨가 장애인 수당을 빼먹는 동안 서울시와 구청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안씨에 대한 감독과 모니터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양천구청의 경우 안씨가 올리는 장애인 수당 신청 내역을 담당 팀장과 과장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서울시 감사도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

말단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주무르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대상자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지 예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기초수급 생활급여의 경우 올해 예산 총액(중앙정부 예산+시 · 도 단위 지자체 예산)은 4조1000억원에 달한다. 전국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모임인 사회복지행정연구회 회원이 1만여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련 공무원 1명이 기초수급 생활급여만 4억원 이상을 굴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이번에 문제가 된 장애인 수당(4200억원) 등을 더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안씨로선 군침을 흘릴 만했다.

장애인 수당 등 보조금 지원 현황을 전산이 아닌 수기(手記)로 관리해 온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전산망으로 보조금 현황을 조회할 수 있게 되면 과거 실적을 수시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기로 관리하면 일부러 감사하지 않는 한 과거 횡령 사실을 단번에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서울시의 감사 결과 양천구청 외에 다른 횡령 사건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 체계에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이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복지 정책의 주안점이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하느냐'보다 '예산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맞춰져 있는 게 문제"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예산집행 모니터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