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안타까운 임종 장면은 심전도가 플랫(flat)해지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 심장 근육의 전기적 활동이 멎어서 아예 아무런 파동도 그리지 않는 것이다.

심전도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외래 진료를 받거나 중 · 저가 건강검진 프로그램에서 심장 건강을 체크할 때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무슨 원리인지,효과와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알기 쉬운 심전도》를 번역 출간한 김명곤 경희의료원 순환기내과 교수의 도움말로 심전도의 장 · 단점에 대해 알아 본다.

심장은 전기적 신호의 변화에 따라 쉼없이 움직인다. 심전도는 대표적인 심장 검사로 심장 근육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활동의 크기와 방향의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기록이다. 부정맥의 진단 및 치료에 필수적이다. 흉통의 원인을 찾고 심근경색 환자에게 혈전 용해제를 투여할 때 도움이 된다.

심전도의 파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심장 박동의 전기적 신호는 우심방의 동방 결절에서 시작된다. 심전도의 파동은 'PQRSTU'파로 표현되는데 P파는 심실에 비해 근육이 얇은 심방의 수축과 관련이 있다.

심실은 근육량이 많으므로 심실이 수축할 때엔 심전도의 파동이 크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QRS파가 나온다. 심실의 심근이 원래의 전기적 상태로 돌아갈 때 T파가 나온다. T파 이후의 잔여 파동을 U파라고 한다. 심전도는 이런 파동의 높낮이,시간,간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어떤 원인에 의해 심장 박동에 이상이 있는지 알아 보는 진단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정상인도 심전도에서 이상 변화를 보일 수 있고 심장에 질환이 있는데도 심전도에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식생활의 서구화와 운동 부족으로 심장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같은 허혈성 심장 질환을 제대로 잡아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돌연사로 이어지는 심근 경색은 고지혈증 동맥경화 비만 당뇨병 등으로 혈관이 30~40% 좁아져 있는 상태에서 염증 유발 물질이 갑자기 분비돼 막힘으로써 일어난다. 심장 혈관이 꽉 막히지 않는 한 심장전기 신호에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아주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허혈성 심장 질환을 조기 발견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심전도 검사만 믿고 심장이 건강하다고 믿으면 큰일이다.

이처럼 심전도는 증상과 이상 소견의 관계가 일정치 않아 신뢰도가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서 심전도의 이상을 발견,심혈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돌연사 등을 예방하는 경우도 병원에서 종종 벌어진다. 비록 허혈성 심장병의 조기 발견에는 취약하더라도 심실빈맥,심실세동,심한 서맥 등 부정맥의 결과로 갑자기 심장이 정지하는 위험을 이른 시기에 간파할 수 있는 유용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비용이 저렴하고 인체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검사 시간이 짧아 여전히 심장 질환의 조기 진단에 애용되고 있다. 심전도는 사람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1~2년 내에 크게 변하지 않으므로 검사 결과가 작년과 달라졌다면 원인을 파악해 봐야 한다.

심전도 검사만으로 미흡한 경우에는 운동부하 검사를 받아 볼 수 있다. 가슴에 10개의 전극 단자를 붙이고 러닝머신에서 20분 동안 달리면서 심전도를 측정하는 검사로 고령이거나 퇴행성 관절염,척추 질환을 앓고 있거나 고혈압을 오래 앓았거나 부정맥이 의심되는 사람은 삼가는 게 좋다. 고혈압 부정맥 심근경색인 사람이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응급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게 발생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