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튤립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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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휘 <한국자산공사사장 leech@kamco.or.kr>
'사랑의 고백' 혹은 '영원한 사랑'의 꽃말을 가진 튤립은 그 특이한 왕관모양의 꽃송이부터 화려하고 선명한 꽃잎까지,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아름다운 튤립을 볼 때면 필자에게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필자가 시골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당시 공부할 교실이 모자라 한동안 야외수업을 받아야 했다. 어린 마음에 신이 났던 것도 며칠,화창한 날이면 쏟아지는 졸음에 수업은 뒷전인 날도 있었고 먹구름이 낀 날에는 비라도 쏟아질까 조마조마 하늘만 쳐다보며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린 날도 여럿이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교실에 입성해서 맨 처음 받은 수업이 미술수업이었다. 선생님이 교탁에 걸어 놓은 튤립그림을 보고 모두 따라 그리는 수업이었는데,당시만 해도 진짜 튤립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필자 역시 그림이나마 처음으로 튤립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때 그림 속 튤립에서 뿜어 나오던 그 화려한 자태와 강렬한 아름다움은 이후 오랫동안 필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정작 필자가 튤립을 실제 보게 된 것은 서른이 다 돼 떠난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유년 시절 봤던 그림 속 튤립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그 풍성한 꽃봉오리며 선명한 색깔은 상상 속의 모습을 능가하는 것이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튤립을 따라 그리던 시골 학교에서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튤립이 과거 인류가 최초로 경험한 혹독한 버블의 시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일찍이 오스만제국에서 '술탄의 꽃'으로 찬양받던 튤립은 16세기 후반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다. 특히 당시 교역을 독점해 유럽자본금융의 집결지로서 최고의 국민소득을 자랑하던 네덜란드인들은 전 국민이 가히 '튤립광풍'에 휩싸여 튤립 사재기에 열중했다. 가격이 폭등하면서 투기가 성행,튤립 구근 한 뿌리 가격이 숙련노동자 연봉의 40배까지 폭등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처음 사람들은 튤립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지만 종국엔 일확천금에 대한 욕심과 탐욕에 눈이 멀게 되었다. 하지만 거품은 언젠가 꺼지고 마는 것이 만고의 진리.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튤립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하여 가격이 수천분의 일로 폭락했고,튤립 사재기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사람들의 파산과 자살로 네덜란드 경제는 혹독한 경제공황을 맞게 된다.
오늘날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를 여행하게 되면 각양각색의 튤립을 볼 수 있지만,이는 다름 아닌 400여년 전 튤립의 마성적 매력의 이면에 각인된 인간의 부에 대한 끝없는 탐욕의 흔적인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모두가 고통 받는 지금,튤립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보다는 냉혹했던 버블붕괴의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튤립을 볼 때면 필자에게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필자가 시골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당시 공부할 교실이 모자라 한동안 야외수업을 받아야 했다. 어린 마음에 신이 났던 것도 며칠,화창한 날이면 쏟아지는 졸음에 수업은 뒷전인 날도 있었고 먹구름이 낀 날에는 비라도 쏟아질까 조마조마 하늘만 쳐다보며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린 날도 여럿이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교실에 입성해서 맨 처음 받은 수업이 미술수업이었다. 선생님이 교탁에 걸어 놓은 튤립그림을 보고 모두 따라 그리는 수업이었는데,당시만 해도 진짜 튤립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필자 역시 그림이나마 처음으로 튤립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때 그림 속 튤립에서 뿜어 나오던 그 화려한 자태와 강렬한 아름다움은 이후 오랫동안 필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정작 필자가 튤립을 실제 보게 된 것은 서른이 다 돼 떠난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유년 시절 봤던 그림 속 튤립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그 풍성한 꽃봉오리며 선명한 색깔은 상상 속의 모습을 능가하는 것이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튤립을 따라 그리던 시골 학교에서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튤립이 과거 인류가 최초로 경험한 혹독한 버블의 시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일찍이 오스만제국에서 '술탄의 꽃'으로 찬양받던 튤립은 16세기 후반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다. 특히 당시 교역을 독점해 유럽자본금융의 집결지로서 최고의 국민소득을 자랑하던 네덜란드인들은 전 국민이 가히 '튤립광풍'에 휩싸여 튤립 사재기에 열중했다. 가격이 폭등하면서 투기가 성행,튤립 구근 한 뿌리 가격이 숙련노동자 연봉의 40배까지 폭등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처음 사람들은 튤립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지만 종국엔 일확천금에 대한 욕심과 탐욕에 눈이 멀게 되었다. 하지만 거품은 언젠가 꺼지고 마는 것이 만고의 진리.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튤립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하여 가격이 수천분의 일로 폭락했고,튤립 사재기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사람들의 파산과 자살로 네덜란드 경제는 혹독한 경제공황을 맞게 된다.
오늘날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를 여행하게 되면 각양각색의 튤립을 볼 수 있지만,이는 다름 아닌 400여년 전 튤립의 마성적 매력의 이면에 각인된 인간의 부에 대한 끝없는 탐욕의 흔적인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모두가 고통 받는 지금,튤립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보다는 냉혹했던 버블붕괴의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