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주 들락날락했던 곳이 바로 전당포였다. 자취나 하숙을 하는 대학생들은 입학선물로 받은 시계 등을 전당포에 맡기고 급한 생활비를 조달했다. 청춘 남녀들 또한 이 곳에서 곧잘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부도 등 경제적 위기를 맞은 사람들은 금붙이 등을 저당 잡혀 마련한 돈을 재기의 발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물론 맡긴 애장품을 언젠가는 되찾아가겠다는 고객들의 다짐은 괜한 소리로 끝나기 일쑤였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그런가 하면 고리대금업을 하는 등 전당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담보 없이 소액의 돈을 융통해주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당포 위상이 위축되고 만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급전 마련이 마땅찮은 서민들에게 전당포는 나름대로 금고 역할을 해왔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당포가 이탈리아의 한 신부에 의해 1428년 첫선을 보인 이래 동 · 서양을 막론하고 사금융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게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몰아닥치면서 전당포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출장 감정을 비롯 사채 대출,온라인 쇼핑몰 운영 등으로 사업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으며,'인터넷 전당포'와 고가의 물품만 취급하는 '명품 전당포'까지 성업 중이라는 소식이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다. 멕시코에서는 서민들에 대한 은행 대출이 까다로워지자 자동차,가전제품을 담보로 소액을 빌려주는 전당포 프랜차이즈가 호황을 누리고 있고,러시아에서도 전당포인 롬바르드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1949년 공산당 정부수립 이후 사라졌던 전당포가 다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베이징에만 2000여 곳이 영업 중이라고 한다.

전당포는 돈 없는 서민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가 아닐까 싶다. 수입은 줄어들고,쓸 돈 구할 길은 막막하니 서민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을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전당포의 호황 소식이 달갑지 않은 요즘이다.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경제 사정이 언제쯤 풀릴지 걱정스럽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