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글로벌 신용위기 재연과 환율 불안으로 추가 하락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녹여줄 만한 호재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연기금의 지수 방어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닷새 연속 내려 1065선까지 떨어져 최근 2개월 동안 지속된 1100~1200의 박스권 하단이 깨진 상태다. 여기에 주말 미국과 유럽 증시가 모두 약세를 보여 이번 주에는 코스피지수 1000선 방어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하지만 개인들의 저가 매수세는 비교적 활발해 추가 하락폭이 커지면 곧바로 반등을 모색하는 시도가 잇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환율 불안이 관건
하락 압력커진 코스피…연기금에 기대

무엇보다 달러당 1500원을 돌파한 원 · 달러 환율 급등세가 증시에 가장 큰 부담 요인이다. 동유럽 국가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불거지면서 '3월 위기설'이 고개를 들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환율은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우 우리투자 등 주요 10개 증권사의 환율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앞으로 한 달간 최저 1530원,최고 1600원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환율 불안은 외국인 매도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빠른 시일 내에 안정되지 못하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차익 기대가 사라지는 만큼 국내 증시에서 '팔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의 급락세도 외국인의 '셀(Sell) 코리아'를 촉발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기관투자가들이 1100선에서 사들였던 주식이 많아 추가 하락 땐 손절매성 매물이 대거 쏟아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권고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원은 "최근 지수 저점에서는 매수를 보였던 기관의 로스컷 물량이 나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도 "이달 초 코스피지수가 1200선 안착을 시도하는 동안 주식 편입 비중을 높였던 기관 가운데 아직 비중을 충분히 낮추지 못한 곳이 꽤 있어 지수 1000선이 위협받을 경우 대량 매물이 나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전했다.

시중 자금이 엄청나지만 단기 부동자금화할 뿐 증시 유입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금융통화위원회의 잇단 기준금리 인하에도 여유자금은 단기 상품에만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초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MMF 잔액은 지난 19일까지 8일째 증가,124조3158억원에 이른다.

◆증시 반등 동력 찾기 어려워

악재는 수두룩한 반면 증시 반등을 이끌 만한 동력은 찾기 힘든 상황이다. 올 들어 증시 반등을 뒷받침했던 경기 부양 등 각종 국내외 정책 재료도 당분간은 이렇다 할 게 없다. 서정광 LI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번 주엔 특별한 정책 모멘텀을 기대하기 어려워 증시가 반등을 위해 기댈 언덕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연기금이 추가 하락을 제한할 수 있는 보루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연기금은 17일부터 나흘간 유가증권시장에서 3133억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8439억원 순매도)과 투신(1조2109억원 순매도)의 동반 순매도에 맞섰다.

이 기간 연기금은 삼성전자를 624억원 순매수해 가장 많이 사들인 것을 비롯 LG전자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 삼성SDI 등 정보기술(IT)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또 신한지주 포스코 현대차 SK텔레콤 등 시가총액 상위 업종 대표주들을 사들여 지수 방어 효과를 높였다는 평가다.

연기금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 가운데 글로비스가 이 기간 주가 하락률이 0.56%에 그치는 등 13개 종목이 코스피지수(-9.31%)보다 하락률이 작았던 점도 눈길을 끈다.

연기금이 지수 방어에 적극 나설 경우 개인들의 저가 매수세가 가세해 지수가 추가 하락한 후에 반등을 시도하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승우 연구원은 "1000선이 일시적으로 깨지더라도 지난해 10월처럼 공포심이 커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