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졸업생인 나는 몇 해 전부터 여고 동창회장을 맡아 매년 2월이면 졸업식에 참석했다. 후배들을 위한 간단한 축사를 준비할 때마다 참 난처했다. 졸업생 중에 졸업이 즐거운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재수를 해야 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원치 않는 학과지만 재수하기 두려워 그냥 다녀야 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집안 사정 때문에 직장으로 직행해야 하는 학생도 있을 마당에,무작정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려니 허허벌판으로 내던져진 후배들이 마음에 걸려 도저히 제대로 된 축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학은 한 번에 붙었지만 사법시험은 여러 번 떨어졌다. 대학 4학년 때는 1차 시험에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졸업하던 해에 1차 시험은 붙었는데,그 다음 해 2차시험은 떨어졌다. 열명이 함께 공부한 스터디 그룹 중에 떨어진 사람은 나 혼자였다. 대학 동기들은 석사학위를 받고 대학원을 졸업하는데 나는 여전히 백수로 이리저리 남루한 독서실을 전전하며 사시 공부를 계속 해야 했다.

고교를 졸업한 후에도 내내 같은 곳에 살았던 나는 동네에서 자주 여고 선생님이나 동창생들과 조우했다. 시험에 한두 번 떨어지고 나니 날이 갈수록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너 사법시험 공부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어떻게 됐니?"란 질문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었다. 법서와 법전이 잔뜩 든 무거운 배낭을 메고 후줄근한 행색으로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일라 치면 나는 행여 그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슬금슬금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서성이다가그들이 떠났음직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다시 걸어 나오곤 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주말에 데이트를 하려고 모처럼 화장을 하다 보면 거울을 보다가도 한숨이 나왔다. '시험에도 못 붙는 쓸모없는 인간이 화장은 뭣하러 하나…'하고.보는 시험마다 떨어지니 운전면허 시험도 떨어질까 두려워 시험 보기를 주저한 적도 있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암울한 시간도 결국은 지나갔다. 약간 무모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 실패를 겪어 본 덕분이다. 20대 초반 몇 번의 실패를 이겨내니 30대에 기다리고 있던 무자비한 담금질도 가뿐했다. 실패를 모르던 내 어린 시절의 물렁살에는 실패를 겪어내면서 근육도 붙고 맷집도 잡혔다.

실패는 겪기 전에는 무섭기 그지없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별게 아니란 건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같은 실패도 젊어서 겪으면 별게 아니다. 그게 나이가 부리는 마법이다. 재수생들에게 감히 외친다. 추위를 이겨 낸 나무만이 견고한 나이테를 만들고 아름드리로 자랄 수 있다고.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번 해보는 거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