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파산절차가 진행 중인 외국회사에 대해 한국 법원이 파산을 선고했다. 이번 파산선고는 2006년 통합도산법과 함께 도입된 '병행파산'규정을 적용한 첫 케이스다. 채권자들은 이 회사가 갖고 있는 한국 내 재산에 대해 한국 법원에 신고해 따로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수석부장판사 고영한)는 이탈리아인 비키 카를로씨(Vichi Carlo)가 제기한 네덜란드 회사인 LG필립스디스플레이홀딩스(LPD홀딩스)에 대한 파산신청을 받아들였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LPD홀딩스가 카를로씨에게 지급해야 할 채권이 있고 네덜란드 법원이 LPD홀딩스에 대해 파산을 이미 선고하는 등 파산원인이 충분한 것으로 입증된 만큼 LPD홀딩스에 대해 파산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파산선고와 함께 장경찬 변호사를 파산관재인으로 선임하고 채권신고기간을 오는 3월20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채권자는 3월20일 전까지 채권을 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법원은 신고된 채권을 검토한 뒤 4월23일 제1차 채권자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LPD홀딩스는 네덜란드의 필립스사와 LG전자가 2001년 3월 네덜란드에 설립한 합작회사로 현재는 LG전자와 지분관계가 완전히 정리됐고 국내 사업도 중단한 상태다.

LG디스플레이(옛 LG필립스LCD)와도 무관한 회사다. LPD홀딩스는 2006년 1월 이미 네덜란드 법원에서 파산 결정을 받았다. 이후 네덜란드 파산관재인이 남은 재산에 대한 파산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회사에 2억유로(약 3845억원)의 채권을 갖고 있던 카를로씨는 네덜란드 법원이 절차를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는다며 한국 내 남아있는 이 회사의 재산 약 1조6957억원을 한국 법원에서 파산절차를 진행해 달라며 파산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의 이번 파산선고는 외국인 회사에 대한 외국인의 채권신청을 받아들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의 김세연 변호사는 "향후 다른 외국회사가 해외에서 파산을 해도 국내에 재산이 있다면 국내 채권자들은 한국 법원에 별도로 파산신청을 해 좀 더 많은 채권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 용어풀이 ]

◆병행파산=외국에서 파산절차를 진행 중인 회사가 한국 내에 재산이 있다면 한국 법원도 별도로 파산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절차다. 회사의 국적에 관계없이 한국 내에 재산이 있다면 채권자가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