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명동성당에 운집한 사람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불안한 삶에 좌표와 버팀목 잃어
푸근ㆍ당당함에 정신적 지주 찾아
불안한 삶에 좌표와 버팀목 잃어
푸근ㆍ당당함에 정신적 지주 찾아
'진실되게 살고 남을 사랑하라.고통은 인내를,인내는 희망을 낳는다. '1997년 4월 10일,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경제신문과의 특별인터뷰를 통해 전한 메시지다. 김 추기경은 이 인터뷰에서 퇴임 후의 소망으로 '운전면허를 따서 혼자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는 것을 꼽았다.
이처럼 소박하고 솔직했던 김 추기경이 선종 후 기적을 일으켰다. 추모객이 40만명을 넘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해석은 의외로 간단하다.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 없는 이들,마음 놓고 의논하고 기댈 사람이 없어 외로운 이들,정신적 지주가 없어 답답했던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보여준 김 추기경에 대한 조문으로 잃었던 삶의 길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추기경의 삶은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소박함이다. 아이들조차 소홀히 여길 수 있는 선물용 열쇠고리를 소중하게 보관한 데서 드러나듯 추기경의 생활은 근검절약 자체였다.
두 번째는 푸근함과 친근함이다.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그가 이웃집 할아버지같았다고 얘기한다. 가요 '애모'를 열창한 건 널리 알려졌거니와 입원해서도 세 마디 중 한 마디는 농담을 해 내방객들을 웃겼다고 할 정도다. 말씀집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안심하라 아들아,너는 죄를 용서받으리라'는 기도서 구절을 곧잘 읽는데 이보다 더 위안받는 말이 없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누구를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한 일도 없고,세월이 지나면서 덕을 자꾸 닦아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됩니다. 변덕만 자꾸 늘어가는데,변덕도 덕입니까. "
세 번째는 정의로움이다. 유신독재 시절 서슬 퍼런 정권에 맞선 일은 유명하거니와 이후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인을 위해서라든가 역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는 말로 국민을 채찍질하는 일이 다신 있어서는 안됩니다. "
넷째는 실천이다. 그는 앞의 말씀집에서 일선 교회의 신부 시절이 가장 보람 있었다며 교회에서 허락만 해준다면 언제라도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의 부드럽고 고요한 모습,편안하면서도 단아한 얼굴,천진하다 싶은 표정은 아마 이런 삶의 소산일 게 틀림없다. 실제 97년 직접 만났을 때는 물론 선종 후 TV화면에 비쳐진 모습은 고단하고 불안한 현실에 떠는 사람들에게 "왜 그랬니,뭘 잘못했니"라고 따지지 않고 그저 "기운 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줄 듯했다.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는 또한 변하고 무너지고 망가지지 않은 이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변하고 무너지고 망가지지 않기 위해선 외로움과 두려움,미움,답답함,안타까움을 모두 견뎠어야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말했다. "신자라는 건 구원이요 은총입니다. 이에 반해 성직자라는 건 직분이요 소임을 다해야 하는 무거운 짐입니다. "
무릇 지도자의 자세는 바로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에게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실천하는. 약자라는 이유로 양보나 이해 없이 제 주장만 하려 드는 이들도 이끌고 가려 애쓰는.하도 터무니 없어 얄밉고 괘씸하다 싶어도 오죽하면 그러랴 싶어 가엾게 여기고 들어주는 아량을 지닌.그러나 불의와 부패에는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물론 그러자면 부끄러운 것,감춰야 하는 것,들키면 안 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남몰래 지켜야 하는 것을 위해 누군가와 거래해야 하는 사람은 결코 당당해질 수 없다. 지도층을 자처하면서도 그저 소유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버둥대는 이들, 가질 만큼 갖고도 부족하다며 불평하는 이들에게 열쇠 없는 열쇠 고리를 소중히 간직한 채 홀로 혼탁한 세상을 위해 기도했을 추기경과 그를 추모하는 인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섰을 것인가.
이처럼 소박하고 솔직했던 김 추기경이 선종 후 기적을 일으켰다. 추모객이 40만명을 넘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해석은 의외로 간단하다.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 없는 이들,마음 놓고 의논하고 기댈 사람이 없어 외로운 이들,정신적 지주가 없어 답답했던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보여준 김 추기경에 대한 조문으로 잃었던 삶의 길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추기경의 삶은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소박함이다. 아이들조차 소홀히 여길 수 있는 선물용 열쇠고리를 소중하게 보관한 데서 드러나듯 추기경의 생활은 근검절약 자체였다.
두 번째는 푸근함과 친근함이다.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그가 이웃집 할아버지같았다고 얘기한다. 가요 '애모'를 열창한 건 널리 알려졌거니와 입원해서도 세 마디 중 한 마디는 농담을 해 내방객들을 웃겼다고 할 정도다. 말씀집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안심하라 아들아,너는 죄를 용서받으리라'는 기도서 구절을 곧잘 읽는데 이보다 더 위안받는 말이 없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누구를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한 일도 없고,세월이 지나면서 덕을 자꾸 닦아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됩니다. 변덕만 자꾸 늘어가는데,변덕도 덕입니까. "
세 번째는 정의로움이다. 유신독재 시절 서슬 퍼런 정권에 맞선 일은 유명하거니와 이후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인을 위해서라든가 역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는 말로 국민을 채찍질하는 일이 다신 있어서는 안됩니다. "
넷째는 실천이다. 그는 앞의 말씀집에서 일선 교회의 신부 시절이 가장 보람 있었다며 교회에서 허락만 해준다면 언제라도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의 부드럽고 고요한 모습,편안하면서도 단아한 얼굴,천진하다 싶은 표정은 아마 이런 삶의 소산일 게 틀림없다. 실제 97년 직접 만났을 때는 물론 선종 후 TV화면에 비쳐진 모습은 고단하고 불안한 현실에 떠는 사람들에게 "왜 그랬니,뭘 잘못했니"라고 따지지 않고 그저 "기운 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줄 듯했다.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는 또한 변하고 무너지고 망가지지 않은 이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변하고 무너지고 망가지지 않기 위해선 외로움과 두려움,미움,답답함,안타까움을 모두 견뎠어야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말했다. "신자라는 건 구원이요 은총입니다. 이에 반해 성직자라는 건 직분이요 소임을 다해야 하는 무거운 짐입니다. "
무릇 지도자의 자세는 바로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에게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실천하는. 약자라는 이유로 양보나 이해 없이 제 주장만 하려 드는 이들도 이끌고 가려 애쓰는.하도 터무니 없어 얄밉고 괘씸하다 싶어도 오죽하면 그러랴 싶어 가엾게 여기고 들어주는 아량을 지닌.그러나 불의와 부패에는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물론 그러자면 부끄러운 것,감춰야 하는 것,들키면 안 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남몰래 지켜야 하는 것을 위해 누군가와 거래해야 하는 사람은 결코 당당해질 수 없다. 지도층을 자처하면서도 그저 소유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버둥대는 이들, 가질 만큼 갖고도 부족하다며 불평하는 이들에게 열쇠 없는 열쇠 고리를 소중히 간직한 채 홀로 혼탁한 세상을 위해 기도했을 추기경과 그를 추모하는 인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섰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