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계신용,가계대출과 외상구매를 합한 것)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뿌리 깊은 부동산 선호심리에 따라 주택대출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가계대출과 외상구매 등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688조2000억원으로 1년 전 대비 57조6000억원 늘었다. 사상 최대 규모이며 연간 증가율도 9.1%로 2007년의 8.4%에 비해 높다. 가계신용 잔액을 전체 가구수(1667만3000여가구)로 나눈 가구당 부채는 4128만원으로 1년간 286만원 늘었다. 가계신용 잔액 중 가계대출 잔액은 648조3000억원이며 판매신용(외상구매) 잔액은 39조9000억원이다.

지난해 가계대출 증가액의 31%가량이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다. 작년 말 현재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8조원 늘어난 240조원에 이른다. 가계대출 중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말 기준 36.9%에 달한다.

한은 관계자는 "중도금이나 잔금 용도의 주택대출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정부의 부동산규제 완화대책도 주택대출 증가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농협과 수협 단위조합의 지난해 대출 증가액 16조원 가운데 대부분이 주택대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대출 증가액의 절반 이상을 주택대출이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경기침체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007년(5.0%)에 비해 반토막이 났는데도 주택대출이 이처럼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민의 부동산 소유의식이 강하고 부동산 불패 신화를 아직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재 가계 총자산 중 부동산의 비중은 70% 수준으로 우리 국민은 재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다.

여기에다 부동산가격이 뛰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고소득층이 부동산 투자를 위해 가계대출을 집중적으로 늘린 것도 전체적인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진단되고 있다.

빚더미에 앉은 가계 중 15%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주택담보대출을 회수할 경우 당장 보유 주택을 처분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부동산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소득감소와 맞물려 경제위기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이용한 가계부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금융권이 주택관련 대출의 원금 분할상환 요구를 시작하면 부채가구의 14.9%는 1년 이내,16.3%는 2년 이내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가구는 전체 가구의 44% 정도다.

보고서는 2007년 말 기준 부채가구의 경우 평균 가처분소득은 3800만원,금융자산은 1300만원이지만 부채액은 4900만원에 이른다며 금융회사가 주택대출에서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갚으라고 요구하면 부채를 지고 있는 가구 6곳 중 한 곳은 2년 내 집을 팔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만기일시상환대출을 받은 고객에 대한 만기연장이 95%에 그칠 경우 만기연장 첫해에 금융자산 부족으로 부동산 처분이 필요한 가구는 14.9%에서 17.9%로 높아진다. 만기연장비율이 90%에 머문다면 첫해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 가구는 20.4%로 확대된다.

김현정 한은 경제제도연구실 차장은 "부채를 갖고 있는 가구의 재무건전성은 고소득계층까지 포함해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