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글로벌 경제위기 속 한국 경제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 · 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7원30전이나 오른 1516원30전으로 거래를 마쳤다.

◆항공 · 정유업계 직격탄

요즘 항공업계와 정유업계의 재무 및 구매 담당자들은 하루종일 환율시세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연초 1300원대에서 안정되는 듯했던 원 · 달러 환율이 최근 1400원을 넘어 1500원까지 돌파하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들 기업은 항공기 항공유 원유 등을 모두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회사 실적이 왔다갔다 한다. 1년 내내 환율이 상승곡선을 그렸던 지난해 대한항공은 1조9579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아시아나항공도 2271억원의 적자를 냈다.

대한항공의 경우 원 · 달러 환율을 1200원으로 가정하고 수립했던 올해 사업계획도 모두 뒤집어야 할 판이다. 이 회사는 지금처럼 환율이 1500원대를 유지하면 연간 6000억원의 추가 손실을 입게 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모든 비용을 줄이고 달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현재의 환율이 앞으로 1~2개월만 지속되면 경영계획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SK에너지는 올해 원 · 달러 환율을 1300원으로 가정하고 최대 2조원,최소 1조원을 생산설비 등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환율이 급등하자 투자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환율 상승이 수출업체의 채산성을 호전시키는 효과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 자체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키코 가입 기업,은행 자산건전성 비상

중소기업들은 통화옵션 상품 키코(KIKO)의 악몽에 다시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187개사의 피해액(평가손실)은 총 1조8900억원에 이른다. 중앙회 관계자는 "환율이 100원 오르면 키코로 인한 손실이 3700억원 늘어난다"며 "한계 상황에 몰린 중소기업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들도 원 · 엔 환율 상승으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2006년만 해도 100엔당 800원대였던 원 · 엔 환율이 최근 1600원까지 치솟아 부담이 커졌다. 2006년에 은행에서 6000만엔을 대출받았다면 5억원이었던 원금이 10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당시 연 2% 정도였던 엔화 대출 금리도 최근에는 연 7%대까지 올랐다. 정부는 엔화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엔화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연간 23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은행의 자산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BIS 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자산으로 나눠 산출하는데,환율이 오르면 위험자산에 포함된 자산 중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어나 BIS 비율이 떨어진다.

금융감독원은 원 · 달러 환율이 100원 오르면 시중은행의 BIS 비율이 평균 0.1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율 급등이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쳐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대출자산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도 은행에 위협 요인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환율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손실은 물론 환율이 급변동하면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유승호/김동민/이정선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