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을 기해 실시된 이명박 대통령의 성적표가 나왔다. 취임 초 60%를 웃돌던 지지율은 1년이 지난 지금 30% 초반을 기록 중이란 소식이다. 지난해 5월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동 이후 20% 미만으로 바닥을 치던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선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이요,전임 대통령 중 취임 1년 후 지지율이 30%에도 못 미쳤던 사례가 두 번이나 있었음도 눈길을 끈다.

대통령의 지지율 등락에 신경을 곤두세울 이들이 적지 않을 텐데,이 대목에서 미국의 사회비평가 크리스토퍼 라시가 남긴 고전 나르시시즘의 문화가 떠오른다. 문화 자체가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됨을 현대성의 대표적 특성으로 본 라시는 이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현상의 하나로,특별히 정치인들이 유명인(celebrity)이 되어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곧 정치인들이 대중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정치가로서의 엄격한 역량에 따라 객관적이고도 냉정한 평가를 받기보다 국민적 인기에 따라 정치생명이 좌지우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기애(自己愛)가 심화될수록 사회의 성숙도는 떨어지게 마련이고,사회적 성숙도가 퇴행할수록 현란한 이미지가 초라한 실체를 압도하는 폐해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 라시의 주장이다.

미국 정치에서도 국민적 지지와 대통령직 수행 역량 사이엔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실제로 로널드 레이건만큼 대통령 시절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정치가는 드물 것이다.

이란에 억류됐던 인질을 석방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레이건은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지만,실상 레이건 재임 시 미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헤게모니의 몰락이란 수모를 견뎌내야만 했고,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역량 또한 덩달아 시험대에 오르곤 했다.

존 F 케네디 또한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라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당시 미국은 코앞에서 미사일을 들이대는 쿠바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음을 기억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케네디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데 늘상 인색하다.

반면 워터게이트로 인해 불명예 퇴진을 하긴 했지만 리처드 닉슨은 핑퐁외교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면서 동서해빙 무드를 확산함으로써 후일 소비에트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의 씨를 뿌린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도 나를 싫어했지만 나 역시 국민이 싫었다"는 닉슨의 고백은 드라마틱한 역설로 다가온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국민 지지도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닌 듯하다. 여론이야 대통령을 지지하는지,특정 정책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들쭉날쭉할 것이요,대통령을 지지하느냐,대통령이 잘 했다고 생각하느냐 단어 선택에 따라서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할 것이 틀림없다. 대중의 박수갈채를 받는다는 것이 실상 얼마나 허망한지는 연예인들의 끊임없는 부침(浮沈)을 통해 익히 목격해온 바 있다.

다만 취임 1년이 지난 오늘,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대통령의 성적표를 놓고 '국민과의 소통'에 힘쓸 때란 측근들의 고언(苦言)이 이어지고 있음에 다소 마음이 쓰인다.

물론 국민이 등 돌리는 대통령보다야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는 대통령이 백번 소중할 것이나,지금 세 사람 중 두 사람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대통령에게 정작 필요한 건 단기적 지지율 급등이 아니란 사실 때문이다.

그보단 국가의 앞날을 내다보고 서너 수 앞서 패를 둘 수 있는 소신을 토대로 국정운영에 전념할 뚝심이 필요하다. 지금 국민의 지지도 상승은 달콤한 유혹이겠지만 훗날 역사의 평가는 냉혹함을 기억할 일이다. 지지율은 소신 있는 국정운영의 자연스런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에 굳이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