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6일 발표한 향후 10년간의 예산안 '새로운 책무의 시대(A New Era of Responsibility)'에 담긴 세제 개혁안은 유럽 중세시대의 의적 로빈 후드를 닮았다는 평가다. 부자들과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 서민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로,미국 내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집을 새단장하고,기초를 다시 다지는 일에 역점을 둬야 할 시기"라고 세제 개편의 의미를 강조했다. 전임 부시 정부와 공화당의 감세 지상주의를 던져버리고 클린턴 전 정부 시대의 정책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백악관이 내놓은 2010회계연도(2009년 10월~2010년 9월)부터 2019년까지 10년간의 예산안에 따르면 총 16조4800억달러의 소득세와 4조2150억달러의 법인세를 징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부유층에 대한 여러 감세 혜택을 없애는 방식으로 총 6367억달러의 세금을 더 걷고,기업 등에 대한 각종 세금을 강화하고 조세회피를 줄이는 방식으로 3534억달러의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증세하겠다고 규정한 부유층은 미혼은 연간 20만달러 이상,기혼은 부부 합산으로 연간 25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다. 현재 260만명이 이 계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부유층은 소득세 세율이 33%에서 36%,35%에서 39.6%로 각각 상향 조정된다. 금액으로 따지면 총 3390억달러에 달한다. 여기에다 각종 공제와 자본이득세 감면 혜택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거나 낮아진다. 부유층 세율이 올라가는 것은 1993년 이후 처음이다. 기업의 자본이득과 배당세율도 현행 15%에서 20%로 높아진다.

부유층과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대신 가계와 주로 중소기업에는 각각 7701억달러와 1494억달러의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피터 모리치 메릴랜드대 경제학 교수는 이 같은 오바마의 세제정책을 "로빈 후드식 세제 개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 하원의원은 "부유층 증세는 완강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며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계층의 절반가량이 자영업자"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