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금융권 구제자금을 현행 3500억달러에서 1조100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금융사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계와 기업들로 자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은행권은 지난해 4분기 18년 만에 첫 분기 손실을 냈으며,부실은행 수도 14년 만에 최대인 252개로 늘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내년도 예산안(2009년 10월~2010년 9월)을 발표하면서 오는 9월로 끝나는 올해 예산에 예비비 형식으로 2500억달러의 추가 구제금융 비용을 반영했다. 이는 미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순비용 개념이어서 총액으로 계산하면 7500억달러라고 백악관 예산국은 밝혔다.

예산국은 "1달러를 투입해 부실자산을 매입하면 33센트의 손실(33%)이 발생할 것을 감안했다"면서 "일종의 미래 전쟁비용을 계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정부는 기존 구제금융 7000억달러 중 남은 3500억달러에다 예비비 7500억달러를 더해 총 1조1000억달러를 구제금융 자금으로 책정한 셈이다. 향후 추가로 7500억달러를 사용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재무부는 언제 의회에 승인을 요청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책정해 놓은 것은 금융권 부실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지난해 4분기 현재 부실은행으로 분류된 은행이 전분기보다 81개 늘어나 14년 만의 최대인 252개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FDIC는 또 은행권이 지난해 4분기에 262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18년 만의 첫 분기 손실이다. 씨티,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금융사의 실적은 극도로 나빠진 상태이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업체인 패니메이는 4분기 적자가 256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약 7배나 불어났다. AIG는 600억달러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씨티그룹은 사실상 국유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재무부는 27일 보유 중인 씨티그룹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최대 36%의 지분을 확보하기로 씨티측과 공식 합의했다.

재무부는 씨티의 재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대신 이사회 개편을 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WSJ는 전했다. 재무부와 씨티 간 합의안에 따르면 재무부는 국부펀드 등 민간 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규모에 맞춰 최대 250억달러 범위 내에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기로 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