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국민디자이너 앙드레 김 "75세 아르마니도 건재한데…10년은 더 뛸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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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디자이너'로 불리는 앙드레김의 패션 인생은 올해로 47년째다. 일흔넷 고령에도 패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처음 디자이너로 출발한 반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는 "(자신은)트렌드를 좇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국인의 감수성으로 차별화된 패션세계를 전 세계인에게 전파하는 '종합예술인'"이라고 늘 강조한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연간 5~6차례 이상 펼치는 패션쇼,앙드레김 도자기 · 자전거 등 각종 콜라보레이션과 라이선스 사업,제2 앙드레김 아틀리에 건립….원로 디자이너로 손꼽히지만 젊은 디자이너들을 뛰어넘는 왕성한 활동으로 오히려 아틀리에의 젊은 식구들이 그를 버거워할 정도다.
오는 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릴 패션쇼와 5월께 열 예정인 제2 앙드레김 아틀리에(경기도 기흥)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다는 앙드레김을 지난달 23일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화이트' 컬러를 대표하는 인물답게 의상실 벽면과 바닥이 모두 깔끔한 화이트 톤이다. 의상실 곳곳엔 취미로 직접 수집하고 있다는,유럽 왕실에서나 볼 수 있는 석고상들과 각종 크리스털 소품들로 가득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 이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쁜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전혀 힘든 기색 없이 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방콕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어떤 행사인가요.
"한국 · 태국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외교통상부와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행사입니다. 원래 지난해 12월13일로 잡혀 있었는데 현지 공항이 마비되는 바람에 3월로 연기된 것입니다. 태국 왕실 후원으로 양국 간 문화교류와 친선을 도모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
▼이번에는 어떤 무대가 펼쳐지나요.
"태국과 한국을 재창조했어요. 수많은 나라에서 패션쇼를 열었지만 태국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설렙니다. 무대를 총 6개로 나눠 내년 봄 · 여름을 위한 178벌의 의상들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특히 '태국의 영광'을 테마로 한 세 번째 무대는 23벌의 의상을 무대에 올릴 텐데,태국 왕실에서 타이 전통 실크를 제공해줬습니다. 이 작품들은 패션쇼가 끝난 뒤 태국 왕실에 기증돼 자선기금을 모으는 데 활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앙드레김 패션쇼' 하면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엔 누가 출연하나요.
"방콕 패션쇼는 배우 이준기씨가 무대를 빛내주기로 했습니다. 섬세한 연기와 동양적인 외모가 이번 패션쇼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죠."
▼전문 모델 외에 연예인을 무대에 세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훈련 받은 전문 모델들은 세련된 멋이 있긴 하지만 감성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연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연기자 모델은 풍부한 표정 연기를 통해 무대 위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습니다. "
▼일흔넷 연세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데 건강관리 비법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운동을 따로 하지는 않습니다. 저한테는 일 자체가 보약이라고 할 수 있죠.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어요. 연초 새 달력이 나오면 맨 먼저 '빨간날' 숫자부터 세어봅니다. 올해는 휴일이 적다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행복해요. 일에 파묻혀 하루하루 보내는 동안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껴요. 하지만 주말에도 나와야 하는 의상실 식구들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가나 화가처럼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팀워크로 진행하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 더욱 활력이 샘솟습니다. "
▼한때 '건강 악화설'도 있었는데요.
"너무 일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몇 년 전 과로로 건강이 안 좋아진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빡빡한 스케줄도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된 상태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
▼앙드레김 도자기부터 속옷,양말,안경,냉장고,조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펼치고 계시는데요.
"산업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앙드레김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 세계와 맞다고 생각한 업체들만 손을 잡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금융 대부업체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제안이 들어왔었고,담배 쪽에서도 요청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
▼올해엔 어떤 새로운 분야에서 '앙드레김'을 접할 수 있을까요.
"올 3~4월께 '앙드레김 벽지'와 '앙드레김 여행가방'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또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건축분야에서도 타운하우스 '앙드레김 빌리지'가 등장할 것 같습니다. "
▼앙드레김의 디자인 세계를 정의한다면.
"전통 치마 · 저고리 같은 소박함보다는 교양미 · 고품격 · 신비감을 추구합니다. 제 작품을 통해 왕비나 황태자를 떠올린다면 앙드레김의 디자인을 제대로 공감하고 있는 겁니다. "
▼이제 후계자는 정하셨나요.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후계자라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하죠.아틀리에 경영인과 앙드레김의 디자인 세계를 이어갈 수 있는 디자이너 양성이죠.크리스찬디올,샤넬,이브생로랑 등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을 보면 뛰어난 후임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어요. 젊은 감각의 디자이너들이 시대 변화에 맞춰 디자인을 재창조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보다 한 살 더 많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아직까지 후계자 없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랄프 로렌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앞으로 10년은 더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후계자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매일 밤 11시에 잠들어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17가지 신문을 훑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즘은 비관적인 기사들만 가득해 마음이 무거워요. 국민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밝은 기사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가족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
▼꼭 이루고 싶은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앙드레김'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찍고 싶어요. 저의 패션세계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