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준 기회'…LEDㆍ차부품 日 철옹성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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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샌드위치 효과 속속 가시화
지난달 26일 충남 당진군에 있는 동부제철 아산만 공장.이곳 임직원들은 경기침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원 · 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음료용 캔에 쓰이는 석도강판(철판) 수출물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나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석도강판에 인쇄를 한 인쇄판을 공급하는 전략으로 품질을 높이고 마케팅 인력을 늘린 것도 한몫했다. 동부제철은 최근 일본,중국 등 경쟁업체를 제치고 잇따라 해외 석도강판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고 있다.
기술은 일본에 뒤지고 가격은 중국에 밀렸던 '샌드위치' 상황이 환율 상승과 국내 기업들의 제품경쟁력 향상으로 역전되고 있다. 발빠른 기업들은 이 같은 '역(逆)샌드위치' 상황을 기회로 삼기 위해 이미 해외시장에 영업 및 마케팅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대차 '베르나'의 역전극(劇)
현대 · 기아자동차는 '원화 약세'를 역으로 활용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시장침체로 경쟁업체들이 주춤한 틈을 타 딜러망을 지난해 말 기준 787개에서 798개로 늘렸다. 현대차는 작년 한 해 동안 미국 시장에서 '베르나(수출명 액센트)' 5만431대를 팔았다. 전년도(3만6055대)에 비해 40%나 판매가 늘어난 건 낮아진 가격 덕분이다. 2007년까지는 베르나가 미국 시장 경쟁 차종인 일본 도요타의 '야리스'에 비해 500~600달러가량 비쌌다. 그러나 작년 이후 베르나 2008년형 가격은 1만775달러로,야리스(1만1350달러)에 비해 5% 정도 싸졌다.
가격 차이는 올들어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베르나 2009년형 모델의 가격은 9970달러로 작년보다 7%가량 낮아졌다. 반면 야리스 한 대 값은 1만2250달러로 900달러 비싸졌다. 두 경쟁 차종간 가격차가 20% 가까이 확대됐다. 이 덕에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베르나의 판매량은 3560대로 전년 동기(2940대)보다 21.0%나 늘었다.
◆일본 공략,지금이 기회다
국내 기업들은 원화의 나홀로 약세 상황을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기회로 삼고 있다. 삼성전기는 'LED(발광 다이오드)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일본 시장에 LED 조명을 수출하게 됐다. 일본 최대 사무가전 회사인 우치다양행이 자국업체들을 뒤로 하고 삼성전기로부터 제품을 납품받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품질과 기술력을 높인 데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일본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며 "앞으로 일본시장 매출을 높여나가기 위해 영업과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고 있는 중견기업 A사는 회사 내에 일본시장 공략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엔고로 일본 업체들의 제품 가격이 배 가까이 상승하자 다른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아예 일본 자동차부품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것.회사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해외 경쟁입찰이 줄어들고 국내업체들이 단독으로 수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기업들도 국내 기업들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대화연료펌프는 최근 미국 LA에 있는 K사와 20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원가절감을 위해 아웃소싱 거래처 변경을 추진하던 K사가 부품 품질과 가격이 적절한 한국의 대화연료펌프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선박엔진부품을 만드는 세보엔지니어링도 원화 약세와 높은 기술력에 힘입어 영국에서 처음으로 엔진 밸브,노즐,피스톤 링 등의 수출 물량을 따냈다. 마스크팩을 수출하는 남양도 최근 대만과 호주 등의 경쟁사를 제치고 주요 선진국 거래처를 선점해 나가고 있다. 트랙터 등 농기계를 판매하고 있는 LS엠트론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일본,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훨씬 유리해졌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 영업망을 확대하고 나섰다.
KOTRA 관계자는 "역샌드위치 상황을 이용해 기존에 뚫지 못했던 시장을 개척한다면 우리나라의 해외 수출 지역을 훨씬 다양화할 수 있다"며 "앞으로 원화약세가 중단될 경우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다시 낮아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기술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예/이상열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