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잡] (下) 눈높이를 낮춰라 … "내 월급이 얼마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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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고용지원센터 가보니
경비ㆍ건물관리직 거들떠도 안봐
경비ㆍ건물관리직 거들떠도 안봐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실직하신 분들 중엔 연봉 5000만원 이하로는 가지 않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청소 업무를 구하시는 분들 중에도 출퇴근 시간,휴일 등과 관련한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분이 상당하고요. 이곳 서울 강남에 위치한 회사만 고집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
지난달 2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에 자리한 서울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취업 상담원들이 줄서서 상담을 기다리는 어두운 표정의 실직자들과 쉴새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응대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다.
머리가 희끗한 40~50대 남성들과 30대가량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고용지원센터를 찾은 실직자의 대부분.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부터 여러 차례 방문한 사람,전화로만 수십차례 연락하는 사람까지 다양하지만 손쉽게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연봉 눈높이 차이는 2배 이상
신규 실업자와 구인 업체 간 눈높이 차이가 가장 크게 나는 분야는 단연 임금.경력이 웬만큼 되는 실업자는 예전 직장에서 받던 임금의 4분의 1수준으로 갑자기 떨어진 수준의 소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취업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고정민씨는 "과거 대기업에서 연봉 7000만원 넘게 받던 임원출신분들은 최소 50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서 "하지만 기업체의 구인요구는 대부분 경비직,건물관리,사무요원으로 급여가 100만~150만원 수준이어서 실직자와 구인기업을 연결시켜 주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젊은층 실직자들의 경우에도 임금문제를 핵심으로 휴일과 퇴근시간 등 근무여건에 대한 까다로운 주문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임금수준만 맞춰주면 취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실제 기업과 연결되면 다양한 요구사항이 추가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여러 상담사들이 "지난번에는 월급만 맞춰주면 된다고 그래놓고 이제 와서 교통이 불편하다고 다른 데 알아봐달라고 하다니요?"라고 어이없어 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물론 "리스트를 뽑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안심시키지만 돌아서서는 고개를 젖곤 한다.
장기 구직자나 여성가장,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심층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장종옥 직업상담서기보는"요즘 실직자들도 새 직장을 구할 때 여가 등은 무시못할 요소"라며 "취약계층이라고 해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아무 일자리나 구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전했다.
구직자와 구인업체 간 눈높이 격차는 최근 경기불황으로 인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구인기업들이 "일할 사람 널려있다"며 고용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며 고자세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연봉 1800만원수준에서 사람을 구하다가도 최근 들어 연봉수준을 1600만원대로 떨어뜨린 업체도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용지원센터에서 임금 관련 협상의 폭이나 유연성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와 함께 구직자들에게 요구하는 기업의 스펙도 높아지고 있다. 웹디자인 분야 등 젊은 여성 IT인력들의 경우,CAD(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 같은 관련 분야 기능은 물론 경리 · 회계 업무 및 다른 잡무까지 병행할 수 있을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여기에 구인기업들이 신규고용촉진장려금 등 정부의 고용장려금을 탈 수 있는 특정 연령대와 조건을 갖춘 구직자만 원하고 있어 실직자들의 취업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실제 강남고용지원센터의 경우,지난 1월 구직자 수는 2336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2.5% 늘었지만 취업알선건수는 22.4% 감소했다. 취업자 수도 전년 동월 대비 무려 65%나 줄었다.
◆'눈높이 맞출'대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눈높이 차이를 해소할 대책으로 실업자들 개인이 처한 위치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상담업무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각종 구인구직 관련 정보가 투명하고 원활하며 알기 쉽게 전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의 100만 일자리 창출 캠페인 '밀리언 잡' 자문위원인 장미혜 노동부 서기관은 "산업현장에선 일자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높이 문제로 외국인이 고용되면서 내수 창출이 안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비자발적 이직자들의 경우 해직 한 달 동안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취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터넷에서 이상적인 직장만 찾지 말고 고용지원센터 등을 방문해 상담을 받는 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실직자 · 구직자들이 손쉽게 믿을 만한 구인구직 정보를 얻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고용정보 사이트로는 노동부의 고용안정전산망인 '워크넷(www.work.go.kr)'이 대표적이다. 워크넷은 데이터가 가장 방대하긴 하지만 주로 사회적 취약 계층이 일용 ·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중하위 고용 시장에 집중됐다는 단점이 있다. 해외 취업의 경우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해외 취업 사이트 '월드잡(www.worldjob.or,kr)'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기타 일반적인 구인 · 구직 관련 정보는 커리어나 잡코리아,사람인과 같은 민간 취업정보 업체들이 담당하고 있다.
'밀리언 잡' 자문위원인 전연진 고용정보원 박사는 "구직자들이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구하지 못한 채 막연히 구직활동을 하는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며 "취업시장에 처음 뛰어드는 대졸자들의 경우 기업 기획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기획팀을 지망하는 등 막연한 구직활동을 하다보니 눈높이를 못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를 접하면 자연스레 눈높이 조정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이와 함께 구직자들의 직업윤리와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와 그것을 강요하는 가족들의 시선 등 직업윤리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지난달 2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에 자리한 서울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취업 상담원들이 줄서서 상담을 기다리는 어두운 표정의 실직자들과 쉴새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응대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다.
머리가 희끗한 40~50대 남성들과 30대가량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고용지원센터를 찾은 실직자의 대부분.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부터 여러 차례 방문한 사람,전화로만 수십차례 연락하는 사람까지 다양하지만 손쉽게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연봉 눈높이 차이는 2배 이상
신규 실업자와 구인 업체 간 눈높이 차이가 가장 크게 나는 분야는 단연 임금.경력이 웬만큼 되는 실업자는 예전 직장에서 받던 임금의 4분의 1수준으로 갑자기 떨어진 수준의 소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취업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고정민씨는 "과거 대기업에서 연봉 7000만원 넘게 받던 임원출신분들은 최소 50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서 "하지만 기업체의 구인요구는 대부분 경비직,건물관리,사무요원으로 급여가 100만~150만원 수준이어서 실직자와 구인기업을 연결시켜 주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젊은층 실직자들의 경우에도 임금문제를 핵심으로 휴일과 퇴근시간 등 근무여건에 대한 까다로운 주문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임금수준만 맞춰주면 취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실제 기업과 연결되면 다양한 요구사항이 추가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여러 상담사들이 "지난번에는 월급만 맞춰주면 된다고 그래놓고 이제 와서 교통이 불편하다고 다른 데 알아봐달라고 하다니요?"라고 어이없어 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물론 "리스트를 뽑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안심시키지만 돌아서서는 고개를 젖곤 한다.
장기 구직자나 여성가장,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심층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장종옥 직업상담서기보는"요즘 실직자들도 새 직장을 구할 때 여가 등은 무시못할 요소"라며 "취약계층이라고 해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아무 일자리나 구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전했다.
구직자와 구인업체 간 눈높이 격차는 최근 경기불황으로 인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구인기업들이 "일할 사람 널려있다"며 고용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며 고자세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연봉 1800만원수준에서 사람을 구하다가도 최근 들어 연봉수준을 1600만원대로 떨어뜨린 업체도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용지원센터에서 임금 관련 협상의 폭이나 유연성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와 함께 구직자들에게 요구하는 기업의 스펙도 높아지고 있다. 웹디자인 분야 등 젊은 여성 IT인력들의 경우,CAD(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 같은 관련 분야 기능은 물론 경리 · 회계 업무 및 다른 잡무까지 병행할 수 있을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여기에 구인기업들이 신규고용촉진장려금 등 정부의 고용장려금을 탈 수 있는 특정 연령대와 조건을 갖춘 구직자만 원하고 있어 실직자들의 취업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실제 강남고용지원센터의 경우,지난 1월 구직자 수는 2336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2.5% 늘었지만 취업알선건수는 22.4% 감소했다. 취업자 수도 전년 동월 대비 무려 65%나 줄었다.
◆'눈높이 맞출'대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눈높이 차이를 해소할 대책으로 실업자들 개인이 처한 위치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상담업무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각종 구인구직 관련 정보가 투명하고 원활하며 알기 쉽게 전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의 100만 일자리 창출 캠페인 '밀리언 잡' 자문위원인 장미혜 노동부 서기관은 "산업현장에선 일자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높이 문제로 외국인이 고용되면서 내수 창출이 안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비자발적 이직자들의 경우 해직 한 달 동안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취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터넷에서 이상적인 직장만 찾지 말고 고용지원센터 등을 방문해 상담을 받는 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실직자 · 구직자들이 손쉽게 믿을 만한 구인구직 정보를 얻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고용정보 사이트로는 노동부의 고용안정전산망인 '워크넷(www.work.go.kr)'이 대표적이다. 워크넷은 데이터가 가장 방대하긴 하지만 주로 사회적 취약 계층이 일용 ·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중하위 고용 시장에 집중됐다는 단점이 있다. 해외 취업의 경우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해외 취업 사이트 '월드잡(www.worldjob.or,kr)'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기타 일반적인 구인 · 구직 관련 정보는 커리어나 잡코리아,사람인과 같은 민간 취업정보 업체들이 담당하고 있다.
'밀리언 잡' 자문위원인 전연진 고용정보원 박사는 "구직자들이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구하지 못한 채 막연히 구직활동을 하는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며 "취업시장에 처음 뛰어드는 대졸자들의 경우 기업 기획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기획팀을 지망하는 등 막연한 구직활동을 하다보니 눈높이를 못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를 접하면 자연스레 눈높이 조정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이와 함께 구직자들의 직업윤리와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와 그것을 강요하는 가족들의 시선 등 직업윤리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