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들이 불황에도 고(高)환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일본 홍콩 등으로 나갔던 해외 원정 쇼핑족들이 국내로 U턴한 데다 일본 · 중국인 등 외국인 고객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면세점보다 백화점이 더 싼 '가격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명품 수요가 백화점으로 몰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 · 현대 ·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들은 지난달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1.2~5.7% 증가했다. 롯데가 5.7%로 증가율이 가장 높았고 현대가 1.2%,신세계는 2.0% 각각 증가했다.

지난달은 작년 2월과 비교해 설 연휴(지난해엔 1월) 특수가 빠졌고 졸업 · 입학 선물과 혼수 수요도 부진해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했다. 또 휴일이 나흘뿐이고 변변한 세일도 없어 '보릿고개'를 예상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선방했다는 평가다. 반면 이마트의 지난달 매출이 16.5%(기존점 기준) 줄어드는 등 대형 마트들은 10% 이상 감소해 큰 대조를 이뤘다.

이로써 백화점의 1~2월 누계 매출은 롯데 11.8%,현대 4.1%,신세계 6.0% 각각 증가했다. 1월엔 설 특수와 신년 세일이 겹쳐 백화점들이 10% 안팎의 높은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품목별로는 명품과 고가 화장품이 전체 매출 성장세를 견인했다. 롯데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1월 49.5%에 이어 지난달엔 71.0%나 급증했다. 신세계도 명품 매출이 1월 24.5%에서 지난달 45.4%로 껑충 뛰었다. 화장품 매출도 롯데(21.7%) 현대(24.4%) 신세계(27.2%) 모두 20%대의 고성장을 이어 갔다. 이 밖에 롯데백화점에선 레저(22%) 스포츠(15%) 가정용품(10%) 등이 두자릿수 증가했고 신세계에선 비즈니스 캐주얼이 20.3%나 늘어 눈길을 끌었다.

백화점들의 매출 호조에는 지난해 성행했던 원정 쇼핑이 국내 백화점 쇼핑으로 급선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환율 급등으로 백화점의 명품 가격이 면세점보다도 싸지면서 명품 소비자들이 국내 백화점으로 대거 발걸음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루이비통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모노그림 스피드 백'의 경우 백화점이 면세점보다 5%가량 싼 가격 역전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또 엔고로 씀씀이가 커진 일본인 등 외국인 고객이 급증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명품 쇼핑을 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은 지난달 외국인 매출이 1년 전보다 4배 가까이 늘었고 신세계 충무로 본점은 무려 13배나 급증했다. 외국인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대로 미미하지만 내국인 소비 부진을 메우는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

오용석 롯데백화점 과장은 "백화점들이 수입 명품 · 화장품 매장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며 외국 못지않은 상품 구색을 갖춘 것도 국내외 쇼핑객들을 끌어들인 요인"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불황에도 명품과 화장품에 대한 소비 심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