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nomad)는 한동안 철학 용어로 쓰였다. 40여년 전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기존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방식'을 노마드의 세계라고 정의한 게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그 후 노마드현상은 철학 외에도 문학 정신분석 신화학 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현대사회의 문화 · 심리현상 등을 설명하는 데 활용돼왔다.

이뿐만 아니다. 미디어학자인 캐나다의 마셜 맥루한은 30여년 전에 이미 "21세기 사람들은 집 없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노마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비롯 휴대전화 PDA 등 각종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무한의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며 필요한 정보를 얻는 '디지털 노마드'시대가 도래할 것을 일찌감치 갈파한 셈이다.

이러한 노마드 열풍이 직장인 세계에 번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점심값을 아끼려고 인터넷으로 값싼 맛집을 검색하며 필사적으로 발품을 파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런치 노마드(lunch nomad)'족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요 포털 사이트마다 런치 노마드들이 즐겨 찾는 맛집 관련 카페와 블로그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고,이들을 겨냥한 값싼 맛집과 요리법 등을 담은 책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가운데는 조미료를 넣는지,주방이 깨끗한지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가 하면,영양사가 배치된 관공서와 기업체 구내식당만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의 식생활 분야에까지 노마드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인터넷시대를 맞아 새롭게 생겨난 풍속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유목성향을 띤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날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경기침체로 주머니 사정이 갈수록 얇아지는 마당에 한푼이라도 아끼면서 건강을 챙기겠다는 젊은이들의 절실한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는 사회현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절약에 치우친 나머지 식도락까지 없어지는 것을 반겨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