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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무실한 '감사위원회'…현행 상법 허점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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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진의 회계 및 업무집행을 공정하게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사위원회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주주가 감사위원을 모두 뽑는 게 가능한 현행 개정 상법의 허점을 이용, 경영진들이 소위 '어용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용 감사위원회'의 설치를 시도한 상장사는 대부분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한국화장품도 감사위원회 설치를 추진중이다. 경영권 참여를 선언한 HS홀딩스가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 후보를 내세워 표대결을 준비하자 감사위원회 설치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특히 경영권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장사들이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이유는 외부감사의 견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현행 상법상 내부 감사위원회가 구성되면 상근감사 등 외부감사제도는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문제는 감사위원 선출…대주주에 절대 유리

    감사위원회는 애초 경영진을 감사하는 독립기관의 성격을 갖고 탄생했다. 경영진 및 대주주들의 횡령·배임 등 주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업무집행과 회계를 철저하게 감시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그런데 모든 감사위원을 대주주 및 경영진들이 뽑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주주총회에서 대주주가 자신의 지분 만큼 의결권을 모두 행사,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제압하고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개정 상법 542조의10 제1항에 따르면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인 상장회사는 상근감사를 1명 이상 의무적으로 두도록 정했지만,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면 상근감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외부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또 감사위원 선출 방법도 명시돼 있다. 상법 542조의12 제3항에서 감사 또는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회 위원의 경우에는 최대주주 등의 주식을 합산해 3%를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되는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정한 것.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감사위원을 뽑지 못하도록 둔 장치다.

    그렇지만 대주주와 경영진들이 사외이사로만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면 '어용 감사위원회'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 현행 법상 사외이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출될 수 없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대주주와 경영진들은 이같은 법의 허점을 이용, 압도적인 보유지분 만큼 의결권을 행사해 사외이사를 뽑은 뒤 이들 모두 감사위원으로 앉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화장품 등 경영권 분쟁 업체에 자주 등장

    현재 자산총액이 1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인 상장회사의 경우 감사위원회 설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감사위원회 설치가 굳이 필요없는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의 상장사들이 왜 스스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일까.

    대부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업체들이 감사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참여를 시도한 법인 또는 개인들의 견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고 관련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최근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화장품이 좋은 예다. 한국화장품은 오는 6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정관변경을 통해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려고 시도 중이다. 경영참여를 선언한 HS홀딩스가 감사선임 안건을 주주제안 내용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HS홀딩스 관계자는 "한국화장품이 갑자기 감사위원회 설치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한 것은 HS홀딩스의 감사선임 안건 자체를 상정조차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번 주총에서 정관변경 안이 통과되면 HS홀딩스의 감사선임 안건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이에 대해 한국화장품 측은 "이번 감사위원회 도입은 자산규모가 커서 상근감사 1~2명으로는 효과적인 감사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과거 개인 '큰 손' 손영태씨의 경영권 참여로 골머리를 앓았던 탑엔지니어링은 주총에서 손씨의 지분을 제압한 뒤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경우다. 당시 손씨는 "소액주주들의 마지막 권한인 외부감사폐지와 감사위원회 설치라는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며 "주주들의 권한인 기업회계감사가 현 경영진의 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에서 처리됨으로써 제대로 이 회사의 회계처리를 견제하지 못하는 소액주주의 경우 유명무실한 지위로 전락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당국도 현행 개정 상법의 허점을 인정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주주 및 현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뽑고 나서 이들을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할 경우 현행 법상 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는 "애초부터 법이 잘못 만들어 진 것"이라며 "편법일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위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위원회 자체가 이사회의 하위 기관이기 때문에 이사를 먼저 뽑아 이들을 앉혀도 상관 없는 일"이라며 "이 때문에 감사위원을 주주총회에서 선출하는 것도 사실상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감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기존의 상근감사가 자동으로 없어지면 대주주 마음대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부작용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사회 내 기구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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