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변호사가 있는 대형 로펌이라고 한 사건에 수백 명이 다 매달리지는 않죠.그런 면에서 열심히만 한다면 개인변호사도 충분히 통합니다. "

우리나라 유수의 대형 로펌과 중형 로펌 간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키코 소송에서 한 개인변호사가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 화제다. 11년간의 판사 생활을 끝으로 지난해 개업한 이상원 변호사(40 · 연수원 23기)가 그 주인공.올초 현대디지탈테크의 키코소송을 수임한 그는 최근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상대 측인 씨티은행을 대리한 로펌은 국내 최대 로펌.이번 결정으로 현대디지탈 측은 100억원가량의 결제대금 지급을 유예받았다. 현재까지 결정이 나온 키코 효력정지 가처분사건 7건 중 법원이 받아들인 것은 3건에 불과하고 개인변호사는 이 변호사가 유일하다.

이 변호사는 "아직까지도 키코 소송을 대리하고 처음 나간 법정에서 떨렸던 기분이 느껴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현대디지탈의 사건을 수임하고 신문기일에 나간 것은 지난 1월 중순께.금요일 하루 동안만 신문을 진행하는 가처분 재판부의 특성상 법정에는 수십 명의 변호사들이 방청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면이 있던 로펌의 쟁쟁한 변호사들을 보고 꾸벅 인사를 했지만 설마 그들이 이 사건 상대방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평소에 존경해왔던 분들이 제 사건에서 상대방 변호사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앞이 깜깜했다"고 털어놨다.

이 변호사가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주력했던 것은 '법정에서 바로 반박하기'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상대방이 새로 제기하는 쟁점에 대해 검토한 뒤 다음 기일에 서면으로 반박하곤 하는데,이 변호사는 미리 들고 나올 쟁점에 대해 충분히 준비해간 다음 상대가 제기하는 쟁점을 그 자리에서 반박했다고 한다. 그는 "첫 기일이 열리기 전 미국 쪽의 금융관련자들과 연락해 미국에서 유사한 사례에 대해 제기된 쟁점에 대한 검토자료를 미리 만들어놨다"며 "가처분은 신문기일이 몇 번 열리지 않는 만큼 재판에서 구두로 반박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 수석부 배석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변신한 이 변호사는 앞으로 본안 소송에서도 치열한 법정다툼이 예고돼 있다며 준비에 여념이 없다. 미국로펌과 해외금융컨설팅사와 자문계약을 맺을 예정이기도 하다. 퇴직 당시 대형 로펌들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마다하고 개인변호사로 변호사 경력에 첫발을 디뎠던 그는 "중요한 것은 의뢰인에 대해 얼마나 충실하게 변호할 수 있느냐이지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글=박민제/사진=양윤모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