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가 자국 내 6개 반도체 회사를 통합한 뒤 일본 엘피다,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제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치열한 가격경쟁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자국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다.

대만 6개사와 엘피다,마이크론 등을 모두 합하면 세계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40%에 육박해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업체에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경쟁질서에도 대변화가 예상된다.

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치밍 대만 경제부 장관은 "정부가 주도하는 통합 반도체 회사 설립을 총괄할 전문가를 이번 주께 임명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계획에는 일본 엘피다,미국 마이크론 등과 제휴하는 방안도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반도체 회사 통합 대상은 난야테크놀로지,이노테라메모리,파워칩반도체,렉스칩,프로모스,윈본드일렉트로닉스 등 6개사로 알려졌다.

◆거대 반(反) 삼성 연합군 출범하나

이 같은 합병 방안은 대만 정부가 통합을 중재해 왔던 엘피다 연합군(엘피다+프로모스,파워칩,렉스칩)과 마이크론 연합군(마이크론+난야,이노테라,윈본드)을 한꺼번에 묶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등에 대항해 대만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빅 뱅' 수준의 개혁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는 대만 정부가 설립하는 통합 지주회사가 엘피다에 투자하고,마이크론 등과 제휴를 모색하는 형태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조사 기관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이들 6개 대만 반도체 회사가 세계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4분기 기준으로 약 10%이지만 엘피다(15.5%),마이크론(13.8%) 등을 합하면 삼성전자(30.0%)를 뛰어넘는 덩치를 갖게 된다.

◆일본 대만 정부 대대적 지원 가능성

대만과 일본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 지급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국내 업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일본 엘피다 등과의 통합을 전제로 자국 반도체 회사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엘피다 역시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며,이와 별도로 일본 정부에도 공적자금을 신청해 증자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의 도움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삼성,하이닉스 기술력으로 맞대응

이번 합병은 현실화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노테라 등이 아직 입장 발표를 미루고 있고,마이크론과의 제휴가 어느 정도 선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일부에선 삼성전자,하이닉스 등이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미세공정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어 엘피다와 마이크론 연합이 형성된다 해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두 회사는 최근 40나노급(㎚ · 1㎚는 10억분의 1m) 기술 개발에 성공해 올해 3분기부터 제품 생산에 적용할 예정이다. 반면 연합군 가운데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엘피다는 올 2분기 이후에나 50나노 공정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 일본 등지의 업체들은 국내 회사에 비해 기술력에서 6개월~1년 정도 뒤처져 있다"며 "연합군이 규모의 경제로 치고 나온다 하더라도 한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