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 아이젠하워 장군은 미군에게 파리에 입성할 때 연합군의 선두에 서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은 교묘한 작전을 써서 자신과 프랑스 제2기갑사단이 해방군의 진두에 설 수 있도록 했다.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이 어려운 작전을 성공시키자 연합군은 그를 프랑스 독립국의 새 지도자로 대우해 줬다. 드골은 리더라면 반드시 군대의 맨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로버트 그린이 《권력의 법칙》에서 들려 주는 네 번째 법칙 '이미지와 상징을 앞세워라'의 한 사례다.

《권력의 법칙》은 《전쟁의 기술》 《유혹의 기술》과 함께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수작.현대판 《군주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8년 출간 이래 20개 언어로 번역돼 100만부 이상 팔렸으며 국내에는 축약본으로 소개됐다가 이번에 완역됐다.

그린은 《전쟁의 기술》에서 인생과 비즈니스를 전쟁에 비유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 '세상은 음모가 난무하는 궁정 게임터'라고 말한다.

어차피 권력 게임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외면하는 것보다 '게임의 달인'이 되는 게 옳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가 들려 주는 '권력의 법칙'은 모두 48개.《손자병법》을 쓴 손자(孫子)와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 같은 동 · 서양 전략가 및 유혹의 고수 카사노바 등의 일화를 통해 자기 혁신 노하우에서부터 주도권 장악,신중한 아부,우회 조종술,전략적 후퇴,승자의 저주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제5법칙 '목숨을 걸고 평판을 지켜라'에는 제갈량 얘기가 나온다. 제갈량은 단 100명의 병사로 15만명에 달하는 사마의(司馬懿)의 군대를 물리쳤다. 제갈량은 병사들에게 깃발을 내리고 성문을 열어 젖힌 다음 숨어 있게 하고는 홀로 성벽 위에 앉아 향을 피우고 현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적군이 성문 앞까지 왔는데도 그는 태연했다.

그러자 제갈량의 명성과 평판을 익히 알고 있던 사마의는 뭔가 계략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회군을 명령했다. 사태를 좀 더 파악하고 신중하게 대처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마의는 제갈량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감히 모험을 감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화살 한 번 쏘지 않고 대군을 물리친 힘,이것이 바로 평판의 위력이다.

저자는 "한 가지 두드러진 평판을 구축하게 되면 당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굳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더라도 당신의 장점들을 과장해서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권력 게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자세는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라고 조언한다. 분노나 사랑,애정 등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현재와 거리를 두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권력의 결정적인 토대라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반역을 꿈꾸는 각료 앞에서 "죽일 놈"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눈이 튀어 나올 만큼' 화를 냈다가 전혀 동요하지 않는 상대 때문에 더 큰 조롱을 당한 것도 여기에 해당되는 일화다.

순진하게 일만 하고 명예를 뺏기는 것도 금기 사항 중 하나다. 교류 전류를 발명한 니콜라 테슬라가 이 케이스다.

라디오의 발명까지도 그의 연구에 의존한 것이었지만 그는 모든 일을 자기 혼자 하고 싶어했고 과학은 정치와 전혀 상관 없다며 부와 명예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은 잊혀졌고 말년까지 빈곤에 허덕인 채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 살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