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의 대사 사무실은 4일부터 비어 있다. 이태식 주미대사가 이날 한국으로 이임하고,한덕수 신임 주미대사가 9일 부임하면서 생기는 시차상의 공백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신구 대사 간 교체 날짜는 톱니바퀴처럼 한날 이뤄지나 이번엔 이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 대사와 한 신임대사가 서울에서 업무 인수 · 인계를 치밀하게 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현재 대미 관계에서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가 첫째도,둘째도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배려엔 수긍이 간다.

하지만 문제는 나흘 남짓 두 대사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확실한 인수인계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임인 이 대사는 그동안 확보한 FTA 관련 미 행정부 및 의회 동향을 후임인 한 대사에게 빠짐없이 물려줘야 한다. 이 중 인맥 인수인계는 만만치 않다. 이 대사는 재임기간 중 발품을 팔아 300명이 넘는 미 의원들과 친분을 쌓았다. 주요 주를 돌아다니며 주지사들을 설득해 미국 내 한 · 미 FTA 우군으로 끌어모았다. 인맥수첩을 주고받아서만 될 일은 아닌 듯싶다.

물론 한 대사의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그는 브루킹스연구소가 지난해 4월 개최한 개도국 수출성장론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패널로 초청됐을 정도로 미국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당시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참석해 그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서머스는 지금 국가경제위원장으로 백악관에 포진해 있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 브레인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총리 출신인 한 대사의 부임을 앞두고 '빅샷(거물)'이 온다고 기대를 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정치와 외교는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얽힌 일종의 '사람 장사'다. 영향력 있는 미 정부 관계자에다 지역구마다 이해관계가 다른 의원들까지 한 · 미 FTA 비준을 위한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삼아야 한다. 한 대사로서는 이 대사가 건네준 리스트를 들고 처음부터 한 명,한 명 다시 인맥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인맥관리 공백을 없애려면 미국이 대북특사를 임명한 것처럼 한국 역시 일시적이라도 한 · 미 FTA 전담특사를 임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