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였다. 여성단체 임원들과 함께 강원도 태백의 탄광 한 곳을 견학했다. 안전모를 쓰고 인차(人車,갱내 객차)에 올라 수평 선로를 따라 한참 들어간 다음 승강기를 타고 수직갱도를 따라 수백m 아래 지하로 내려가 광부들이 석탄을 캐는 막장 앞까지 도달했었다.

대한석탄공사에서 주선했는데 아마 채탄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나면 연탄값 인상에 무조건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실제 당시 막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며 가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겁던 일은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실감이 다소 덜하긴 했지만 비슷하게 뭉클한 경험을 얼마 전 경북 가은의'문경석탄박물관'에서 했다.

문경석탄박물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인 석탄에 관한 각종 자료를 모은 곳으로 TV드라마'연개소문''대왕 세종''일지매' 촬영지인'가은 오픈세트장'바로 옆에 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연탄 모양 박물관은 실내(2 · 3층) 및 야외,그리고 갱도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아래층엔 석탄의 역사와 역할 관련 자료 및 다양한 암석,위층엔 석탄 운반용 증기기관차를 비롯한 채탄과 선탄(석탄 선별) 과정에 쓰인 각종 장비와 도구 및 현장 재현 사진들이 전시됐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콧날이 시큰해진 곳은 갱도 전시장.1938년부터 94년 폐광 직전까지 석탄을 캤던 은성광업소의 갱도 230m를 활용한 만큼 굴진과 채탄 막장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겨진데다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진 광부들의 작업 모습이 갱도 곳곳에 배치돼 생생함을 더했다.

갱내엔 막장에서 발생했던 붕락의 위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붕락 직전의 굉음과 광원들의 고함소리를 재생시켜 놓기도 했다. 갱도에 다급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위험을 무릅쓰고 석탄을 캐던 이들의 땀방울이 보이면서 이제부터라도 좀더 치열하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야지 싶었다.

뿐이랴.야외에 설치된 진폐순직자 위령비는 광부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더했다.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막장'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막장은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희망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문경석탄박물관 갱도에 한번 서볼 일이다. 막장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 테니.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