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은닉처' 논란 스위스은행] 400년 비밀금고…은밀함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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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고위 책임자나 일반 직원,감독기관 관계자가 계좌 비밀을 누설했을 경우 최고 6개월의 금고형 또는 5만스위스프랑(약 67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만일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엔 3만스위스프랑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해당 은행 또는 감독기관에서의 고용 관계가 종료됐다 할지라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
'세계 제일의 철통 비밀금고'로 잘 알려진 스위스 은행의 고객비밀 보호주의를 법으로 규정한 '스위스연방은행법 제47조'의 내용이다.
1934년 제정된 이 법은 각국 해외 프라이빗뱅킹(PB) 예금의 약 3분의 1인 3조달러를 끌어들인 스위스 금융계의 비밀주의가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이 같은 스위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의 비밀주의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고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스위스 1위 은행인 UBS가 미국 부호들의 탈세를 도왔다는 혐의로 작년 7월부터 미 국세청(IRS)의 조사를 받으면서 고객 정보를 공개하라는 압력이 거세지면서다.
지난달 19일 7억8000만달러의 벌금을 내고 IRS에 300명의 미국인 고객정보를 내준 UBS 측은 지난 4일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며 더 이상 정보를 제공하는 건 스위스 국내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반면 IRS는 UBS에 추가로 5만2000명의 정보를 공개하라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스위스 양측의 정치 공방전으로까지 치달았다. 미 민주당의 칼 레빈 상원의원은 "UBS가 IRS의 미국인 계좌 추적을 방해하는 것이 성실한 납세자를 위한 법 집행에 전쟁을 선언하고 탈세를 돕는 것과 같다"고 맹비난했다. 스위스 측도 이에 지지 않았다.
스위스 최대 정당인 국민당(SVP)은 미 정부의 소송 제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에 대한 외교적 보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스 루돌프 메르츠 대통령도 "스위스 은행의 비밀은 여전히 훼손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비밀주의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자산가들은 스위스 은행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UBS의 글로벌자산부문은 고객들이 잇따라 이탈하면서 2007년 4분기 2조2980억스위스프랑이었던 투자자산 규모가 작년 4분기엔 1년 만에 1조5990억스위스프랑으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UBS의 순손실도 200억스위스프랑(170억달러)으로 스위스 기업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UBS 사태는 스위스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3%대의 성장률을 보였던 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 -0.6%로 경제가 뒷걸음질쳤다.
스위스가 자국 은행의 비밀주의 지키기에 강력히 나서는 이유는 금융업이야말로 험난한 알프스산맥 한가운데 위치한 인구 760만명의 작은 나라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 6만7379달러의 경제 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스위스 금융서비스업의 GDP 비중은 전체의 12.5%에 달했다. 스위스 내 은행 수만도 330여개에 이른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 역사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위스에서 울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 등 신교도 종교개혁가들이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등지에서 위그노(Huguenot · 프랑스 신교도의 별칭)들이 박해를 피해 대거 스위스로 도피해왔다. 특히 위그노계 은행가들은 스위스에 온 뒤에도 '100% 비밀 보장'을 약속하며 프랑스 왕가를 포함한 주요 귀족 고객들의 예금을 관리했다. 1934년엔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십분 살려 독일 나치의 유대인 재산 색출에 맞서기 위해 비밀주의를 아예 법제화했다.
하지만 스위스 금융 경쟁력의 핵심인 비밀주의엔 '검은 돈의 온상'이란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세계 주요 독재자들이 비자금 은닉에 스위스 은행을 이용했고,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스위스 계좌가 있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스위스엔 일반인이 '스위스 은행' 하면 떠올리는 익명계좌가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1991년 익명예금계좌 제도를 폐지하고,94년 돈세탁방지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만 비밀주의 원칙 자체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다. 은행 계좌엔 예금주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고,그 대신 고객 구분을 위한 숫자와 문자가 조합된 계좌명만 있다. 비밀 유지를 위해 고객이 정해진 수수료 외에 별도의 비용 부담을 지지도 않는다. 고객 정보는 해당 계좌의 담당자와 그 상위 책임자만 알 수 있으며,같은 은행 내에서라도 다른 직원들은 절대 알 수 없도록 돼 있다. 또 고객이 탈세 혐의가 있다는 명백한 법률위반 증거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스위스 국내 사법당국조차도 계좌 추적을 할 수 없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만일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엔 3만스위스프랑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해당 은행 또는 감독기관에서의 고용 관계가 종료됐다 할지라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
'세계 제일의 철통 비밀금고'로 잘 알려진 스위스 은행의 고객비밀 보호주의를 법으로 규정한 '스위스연방은행법 제47조'의 내용이다.
1934년 제정된 이 법은 각국 해외 프라이빗뱅킹(PB) 예금의 약 3분의 1인 3조달러를 끌어들인 스위스 금융계의 비밀주의가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이 같은 스위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의 비밀주의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고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스위스 1위 은행인 UBS가 미국 부호들의 탈세를 도왔다는 혐의로 작년 7월부터 미 국세청(IRS)의 조사를 받으면서 고객 정보를 공개하라는 압력이 거세지면서다.
지난달 19일 7억8000만달러의 벌금을 내고 IRS에 300명의 미국인 고객정보를 내준 UBS 측은 지난 4일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며 더 이상 정보를 제공하는 건 스위스 국내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반면 IRS는 UBS에 추가로 5만2000명의 정보를 공개하라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스위스 양측의 정치 공방전으로까지 치달았다. 미 민주당의 칼 레빈 상원의원은 "UBS가 IRS의 미국인 계좌 추적을 방해하는 것이 성실한 납세자를 위한 법 집행에 전쟁을 선언하고 탈세를 돕는 것과 같다"고 맹비난했다. 스위스 측도 이에 지지 않았다.
스위스 최대 정당인 국민당(SVP)은 미 정부의 소송 제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에 대한 외교적 보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스 루돌프 메르츠 대통령도 "스위스 은행의 비밀은 여전히 훼손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비밀주의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자산가들은 스위스 은행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UBS의 글로벌자산부문은 고객들이 잇따라 이탈하면서 2007년 4분기 2조2980억스위스프랑이었던 투자자산 규모가 작년 4분기엔 1년 만에 1조5990억스위스프랑으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UBS의 순손실도 200억스위스프랑(170억달러)으로 스위스 기업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UBS 사태는 스위스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3%대의 성장률을 보였던 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 -0.6%로 경제가 뒷걸음질쳤다.
스위스가 자국 은행의 비밀주의 지키기에 강력히 나서는 이유는 금융업이야말로 험난한 알프스산맥 한가운데 위치한 인구 760만명의 작은 나라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 6만7379달러의 경제 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스위스 금융서비스업의 GDP 비중은 전체의 12.5%에 달했다. 스위스 내 은행 수만도 330여개에 이른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 역사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위스에서 울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 등 신교도 종교개혁가들이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등지에서 위그노(Huguenot · 프랑스 신교도의 별칭)들이 박해를 피해 대거 스위스로 도피해왔다. 특히 위그노계 은행가들은 스위스에 온 뒤에도 '100% 비밀 보장'을 약속하며 프랑스 왕가를 포함한 주요 귀족 고객들의 예금을 관리했다. 1934년엔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십분 살려 독일 나치의 유대인 재산 색출에 맞서기 위해 비밀주의를 아예 법제화했다.
하지만 스위스 금융 경쟁력의 핵심인 비밀주의엔 '검은 돈의 온상'이란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세계 주요 독재자들이 비자금 은닉에 스위스 은행을 이용했고,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스위스 계좌가 있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스위스엔 일반인이 '스위스 은행' 하면 떠올리는 익명계좌가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1991년 익명예금계좌 제도를 폐지하고,94년 돈세탁방지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만 비밀주의 원칙 자체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다. 은행 계좌엔 예금주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고,그 대신 고객 구분을 위한 숫자와 문자가 조합된 계좌명만 있다. 비밀 유지를 위해 고객이 정해진 수수료 외에 별도의 비용 부담을 지지도 않는다. 고객 정보는 해당 계좌의 담당자와 그 상위 책임자만 알 수 있으며,같은 은행 내에서라도 다른 직원들은 절대 알 수 없도록 돼 있다. 또 고객이 탈세 혐의가 있다는 명백한 법률위반 증거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스위스 국내 사법당국조차도 계좌 추적을 할 수 없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