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를 관광할 때는 에펠탑,콩코드 광장,바토무슈(센강의 유람선)가 담긴 엽서를 사고,캄보디아 메콩강을 여행할 때는 강물에 잠긴 수상집이나 메콩강의 일몰 풍경 등이 담긴 엽서를 사게 마련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여행 위치를 알리거나 여행 중의 아름다운 기억을 좀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당연히 서울풍경이 담긴 엽서를 사고 싶을 것이다. 한데 서울에 서울풍경이 담긴 엽서가 없다면?

지난 2008년은 한국 현대시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이를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만해마을에서 '한국 현대시의 세계화와 번역의 문제'라는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행사에 초청된 석학 중에는 필자의 프랑스 지도교수 부부가 들어 있어,학술적 토론은 물론 한국 관광안내까지 맡게 됐다.

학술대회를 끝내고 남은 여행기간을 강원도 해변이나 경주의 관광코스에서 보낼 생각이었으나,그들은 한국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으로 '서울'을 꼽았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지도를 펼쳐 놓은 후 제일 먼저 그들은 서울시립미술관에,그 다음 '경복궁'에 동그라미를 쳤다. 하루 관광일정에 넣으면 좋을 곳을 묻기에 필자는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인사동'에 동그라미를 했다.

프랑스 부부는 첫 방문지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경자 화백의 상설 전시 작품들과 당시 국내 작품들에 매우 흡족해했고,관람을 끝내면서 엽서를 사고 싶어 했다.

기념품 코너에서 전시작품 엽서 외에 '서울을 담은 엽서'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서울을 담은 엽서'는 인사동이나 다른 관광지에서 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갤러리,심지어 인사동의 그 수많은 가게에서도 서울의 풍경을 담은 엽서묶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세계 제일의 관광국에서 온 프랑스 부부가 놀라는 이상으로 필자는 속으로 부끄럽고 속상해서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인사동에는 고궁엽서,연꽃엽서,일출이나 일몰의 시리즈 엽서들이 있었지만 '서울을 담은 엽서'는 아니었다. 서울시청 앞에서 40여 년간 물을 뿜어낸 분수대의 풍경이나,그 후 분수대 대신에 조명에 따라 다양한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바닥분수가 들어선 서울시 광장을 담은 엽서는 없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멋지게 어우러진 전통건물과 현대식 건물,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행렬 퍼레이드,붉은 벽돌의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검은 돔의 지붕을 가진 서울 옛 역사와 2004년 신축된 서울 새 역사,서울 전역을 바라볼 수 있는 남산 타워,외국 관광객들의 쇼핑과 관광명소인 이태원,라이브 클럽이나 다양한 술집이 모여 있는 '홍대 앞'이나 대학로 등 '서울을 담은 엽서'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교묘히 우리 눈에 안 띄었던 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

여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관광객을 따라 떼로 모여 다니던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들렸던 엽서묶음들이 생각났다.

관광지라면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가장 흔한 것이 그 지역의 독특한 건축물과 풍물을 담은 엽서가 아닌가.

우리는 관광대국을 꿈꾸면서도,'서울'을 위한 거대한 페스티벌을 벌이면서도,정작 '서울'의 아름다움을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울'을 보러오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것이다.

한 나라의 수도 풍경을 담은 엽서는 단순한 그림엽서가 아니다. 자국의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한꺼번에 인식케 하는 문화적 핵심 이미지이다.

게다가 작은 종이짝처럼 보일지 몰라도,엽서란 외국인들에게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을 바람처럼 자연스럽고도 순식간에 전할 수 있는 탁월한 메신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