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6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는 예전에 보기 힘들었던 방식의 부품소재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산 부품 조달을 위해 방한하는 일본 제조업체들이 구매희망 부품목록을 제시하는 방식의 '역(逆)견본 전시'가 이뤄지는 것이다. 팔려는 기업이 상품 견본을 전시하면 바이어가 구매를 결정하는 기존의 행사와 정반대로 사려는 측(일본 바이어)이 완제품을 전시하고,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이 해당 업체를 골라 상담을 벌이게 된다.

일본무역진흥회(JETRO)와 공동으로 이 행사를 개최하는 KOTRA 측은 "경쟁력있는 국내 제조업체들에 납품하면서 품질을 검증받은 한국산 부품이 원화 약세로 가격까지 낮아지자 조달을 늘리려는 일본 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산 부품에 '꽂힌' 해외기업 방한 러시

다음 달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제조업계 구매 사절단은 면면이 역대 최고 수준이다. 미쓰비시전기는 6개 공장에서 각종 기계류 · 연료펌프 · 엘리베이터 부품을 조달할 계획이고,미쓰비시중공업은 3개 섹터에서 각종 단조품 · 기계가공품 · 철도용부품을 찾아 방한한다.

이 밖에 어드반테스트가 반도체 검사장비용 PCB를,나메카와케이도는 알루미늄가공품 · 진공장치부품 · 로봇부품에 대한 구매 의사를 밝혔다. 김태호 KOTRA 부품소재산업팀장은 "이보다 더 큰 회사들이 방한하기로 했지만 회사명을 밝히길 꺼려 행사 직전에 전체 방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며 "일본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대규모로 구매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부품 · 소재산업은 그동안 대일 무역 역조를 키워온 '주범'이란 눈총을 받아왔다.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는 300억달러를 훨씬 뛰어넘었다. 김 팀장은 "그동안 깐깐한 국내 대기업들에 납품하면서 품질경쟁력을 키운 국산 부품업체들의 진가에 일본 제조업체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자국산 부품사용 원칙을 고수해 온 상당수 일본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한국을 찾는다는 자체가 하나의 이변"이라고 말했다.

◆미국 · 유럽 제조업체들도 '바이 코리아'

중국에서 자동차 애프터마켓 부품을 생산해온 미국 UCI그룹은 최근 한국으로 공급선을 대체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북미 시장 1,2위를 다투는 이 회사가 한국을 눈여겨보고 있는 건 국산 부품이 품질에서 중국산을 압도하는데다,원화 약세로 가격면에서도 중국산과 별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UCI처럼 중국에 진출해 있으면서도 한국산 부품에 눈독을 들이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늘고 있다. 세계 2위 가정용품 유통업체인 로위즈(Lowe's)와 미국 3위 공업용 공구 유통업체인 그레인저(Grainger)는 작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프리미엄 차이나' 상담회에서 "중국 내 구매원가 상승으로 소싱 다원화를 추진 중이며,그 대상으로 한국 기업에 관심이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BMW그룹의 헤르베르트 디이스 구매담당 총괄 사장도 지난 2~5일 현대모비스 등 부품업체들을 방문,기술 및 제조 현황을 둘러보고 부품 조달 계획을 밝혔다.

미개척지에 부품 수출의 첫 깃발을 꽂는 한국 기업들의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셋톱박스 관련 TCP/IP칩을 생산하는 위즈넷은 지난 2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국제 IC 전시회'에 참가해 115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선 최초로 중국에 TCP/IP 칩을 수출한 것.KOTRA 관계자는 "저가 경쟁이 워낙 치열한 시장이었는데 위안화 절상으로 값이 비슷해졌다"며 "중국산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 덕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