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서 '대우받고 산다'는 월급쟁이들이 많다. 행여 잘리거나 월급이 깎일까봐 가족들이 더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잔뜩 날카로워진 가장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덕될 게 없다는 경험도 작용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로선 가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가장들은 역설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12년 만에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경제위기로 생존의 위협을 받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이 직장인 5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위기 이후 직 · 간접적으로 퇴직 압력을 받아본 적이 있다'는 사람은 26.9%에 달했다. 4명 중 1명꼴이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감원은 없다'며 일자리 나누기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론 퇴직 압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임금 삭감은 더하다. 전체의 32.7%가 '경제위기 이후 실제로 임금이 깎였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신입사원 임금 삭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회사가 기존 사원들에 대한 임금 삭감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자리 나누기를 명분으로 일자리는 늘리지 않으면서 임금만 깎으려 든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게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오면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도 쌓여가고 있다. 전체의 52.2%가 '불황으로 인해 신체적 · 정신적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 증상으로는 '신경이 예민해져 자주 화를 낸다'가 23.8%로 가장 많았다. '뒷목이 땡기거나 두통이 생겼다'는 사람도 19.9%에 달했다. '우울증에 빠졌다'는 직장인도 16.6%로 나타났다. 이어서 △식욕부진 소화불량(12.1%) △이유없이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힘(7.5%) △탈모(6.3%) 등의 순이었다.

이를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의 스트레스지수는 위험 상태로 치솟고 있다.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경우를 10점으로 할 때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대해 7점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3.6%로 가장 많았다. 8점과 6점으로 진단한 사람도 각각 21.1%와 14.8%를 기록했다. 10명 중 6명은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다보니 정신병원을 포함한 각종 병원을 찾는다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마라톤 등 극한 운동에 도전한다는 직장인도 상당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