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가 10일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현재 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힘에 따라 추가 협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재협상이나 추가 협상은 불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미국 통상정책을 책임질 커크 지명자의 인준청문회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추가 협상 현실화하나

커크 지명자의 발언은 사실상 추가 협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만약 미국이 협정문 손질을 요구한다면 최우선 대상은 자동차 분야가 될 공산이 크다.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산 자동차가 연간 70만대 이상 미국에서 팔리는 데 비해 미국산 차는 한국에서 5000대밖에 팔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자동차 분야 협정문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 · 미 FTA 협정문에서 한국은 8%인 자동차 관세를 발효 즉시 모두 철폐하기로 했고 미국산 차의 주종인 고배기량 차에 대한 자동차세와 개별소비세를 개편하는 등 미국 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만큼 수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한국에 차를 더 팔고 싶다면 해답은 한 · 미 FTA에 있다"며 "오래 전부터 미국 업계가 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다 들어가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한 · 미 FTA 처리를 쇠고기 개방 문제와 연계하려는 미 의회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막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한 · 미 FTA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은 반드시 연령에 관계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만 한 · 미 FTA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30개월령 제한을 푸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 의회가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라며 "쇠고기 문제는 FTA와 연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한 · 미 FTA 수정 필요성을 밝힌 것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1월 경기부양법안과 함께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구매) 조항을 통과시키면서 보호무역주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조항은 경기 부양을 위해 미국 정부가 투입하는 건설공사에 미국산 철강만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돼 있어 다른 나라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치권 다시 비준 논란

커크 지명자의 발언을 놓고 국내 정치권에선 또다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이 발언이 아직 미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만큼 한 · 미 FTA 비준동의안의 4월 처리 방침을 고수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미국 상황을 지켜보고 처리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판단이 옳았다"(조정식 원내 대변인)며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 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FTA 비준 문제를 미국의 상황을 지켜봐가면서 논의하자고 하는 건 자주국가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며 "상임위에서 4월 전에 처리하겠다고 이미 합의한 만큼 미 의회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 대책회의에서 "한 · 미 FTA를 조기 비준해야 문제를 신속하게 풀 수 있다는 이 정권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제라도 또다시 국회에서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방침을 철회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한 · 미 FTA가 양측 이익을 균형있게 반영하고 있고 어려운 상황에선 조속히 발효시키는 게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적극 설명하고 그런 방향으로 협의할 것"이라며 "이른 시일 안에 국회에서 원만하게 처리되기 바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류시훈/유창재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