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동안 고질적인 서비스수지 적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놨지만 '공염불'에 그친 것은 서비스산업 분야에 기본적인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조차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몰아가는 좌파적 시각에 함몰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득권 집단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면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 지원 체계를 고수한 탓도 있다. 10일 열린 서비스산업 선진화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서비스산업을 둘러싼 '3대 굴레'를 벗기지 않고서는 결코 해외로 빠져 나가는 수요를 되돌릴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앞뒤 안맞는 규제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발효와 함께 인천,부산 · 진해,광양만권 등 3대 경제자유구역에 외국 교육기관 설립이 허용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들 지역에 자리잡은 외국 교육기관은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원(2008년 3월 개교) 한 곳뿐이다. 영리법인의 진출은 허용하면서 투자 과실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제한하는 앞뒤 안맞는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정부는 근본적인 규제를 걷어내지 못한 채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국내 자본들도 교육 의료 법률 등 기회가 많은 고부가가치 분야에 투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기에 이르렀다.

공공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공공성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자본 유입=양극화'로 바라보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밀려 그동안 의료 분야 투자 활성화의 핵심 과제인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 허용' 등은 의제로조차 꺼내놓지 못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비스산업 활성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영리'라는 말이 주는 어감에 부담을 느낀 재정부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쓰고 있을 정도다.

태국만 하더라도 매년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데 한국은 외국인 환자를 끌어모아 병원에 데려다주는 서비스(유인 알선 행위)를 오는 5월에야 겨우 허용할 만큼 걸음마 단계다. 뛰어난 의술을 갖고도 "의료는 공공서비스"라는 편협한 인식에 가로막혀 규제 위주로만 접근했다는 얘기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의료 분야에서 지나친 공공성 규제로 인해 외부 자본의 유입 기회 자체를 차단해 버리는 부작용이 생겼다"며 "의료인력의 역량이나 진료비 등에서 충분히 대외 경쟁력이 있는데도 의료수지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진입장벽으로 경쟁력 저하

분야별로 진입장벽을 높게 쌓고 경쟁 없이도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둔 것도 문제다. 한국의 변호사 1인당 국민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에 달한다. OECD는 한국 로스쿨 정원의 상향 조정 및 궁극적 폐지를 권고했지만 자격사들의 반발에 밀려 제도 손질은 한참 뒤로 미뤘다. 약사들의 반발 때문에 두통약이나 자양강장제 하나도 편의점에서 팔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도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제다.

해외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 제조업에 비해 이처럼 경쟁을 제한해 기득권 추구가 가능한 구조로는 결코 경쟁력 강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법률 의료 복지 분야에서 진입을 가로막는 정치적인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인력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자격시험 제도를 재검토하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