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언어를 권력이라고 한다. 언어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지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이건 그 사회의 지배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권력집단에 속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고 그렇지 못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쉽다. 병원에서는 의학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법원에서는 법률용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힘을 가진다. 그 어려운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영어교육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도 영어가 세계의 지배적 언어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 보건대 나의 유년 시절은 언어 권력의 피해를 입었던 시기다. 당시 선친께서는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셨는데 박봉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이를 아시게 된 조부님이 나를 지방의 본가로 데려가셨고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며칠 뒤에 시행된 첫 반장선거에서 나는 후보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었다. 내 말을 다른 친구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2학년이 되어 서울로 전학한 나는 표준말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차별을 받아야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언어 권력의 잠재적 피해자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사회가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이 있는데 바로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이다. 이주 노동자 또는 결혼 이민자의 자녀들로 부모 모두 또는 어느 한쪽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경우다. 통계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05년까지 16년간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건수는 24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가정에서 2명의 아이들을 낳았다고 하면 48만명의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있는 셈이 된다. 거기에다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도 있고 최근 국제결혼 건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 가족의 자녀 중 상당수가 언어발달 지연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초기 어휘 습득을 비롯한 언어적 능력의 발달 측면에서 남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다양한 문화요소들을 보듬어 안고 새로운 문화를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한몫을 할 소중한 인적자산이다. 그런 이들이 언어발달 지연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차별과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보건복지가족부가 올해 이들 자녀를 대상으로 언어발달지원 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사업의 내용은 이들의 언어발달을 지원할 전문가를 양성해 전국 11개 지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파견하는 것이다. 언어진단,아동 심리,한국어교육,유아교육,다문화 이론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이들 인력은 자신들이 배치된 센터와 관내 보육시설에서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언어진단 및 평가를 하고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있다고 판단된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언어지원 사업을 벌인다. 내년에는 사업의 규모가 확대된다고 하니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주문한다면 이 사업이 일시적 대응요법이 아니라 진정한 다문화 사회의 정립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들 자녀가 이중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다문화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요소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