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들이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는 기름값을 왕창 올리고,국제유가 하락시에는 기름값을 찔끔 내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휘발유 등 각종 유류 제품가격의 60%를 차지하는 과도한 세금 부과가 더 문제다. 차에 기름을 넣는 게 아니라 세금을 넣는 셈이다. "(대한석유협회)

국제유가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ℓ당 1600원(서울지역 기준)을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휘발유값을 놓고 정부와 정유사 간 '네 탓' 공방이 재연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정부다. 공정위는 최근 외부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지난 12년간 국제휘발유 가격이 1원 오를 때 국내 휘발유 소매(세전)가격은 1.15원 오른 반면 국제휘발유 가격이 1원 내릴 때 국내 휘발유 가격은 0.93원 떨어지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올릴 때만 '화끈'할 뿐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미적거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이 회원사로 가입해 있는 대한석유협회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협회는 "휘발유 소매가격은 정유사가 일선 주유소에 공급한 휘발유 도매가격에 주유소 마진 등이 포함된 가격이어서 순수한 정유사의 공급가격과는 상관이 없다"며 화살을 주유소업계로 돌렸다. 협회 측은 올해 유류세 환원 조치로 휘발유 가격에 ℓ당 83원의 인상요인이 발생하는 등 오히려 정부의 무리한 세금정책이 기름값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정유업계 간 기름값 책임 공방을 보며 울화증을 호소하는 독자들이 많다. 경기 침체에 따른 가계부담 가중으로 당장 10원이라도 더 싼 기름을 넣기 위해 셀프주유소를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의 심정이 얼마나 쓰라린지를 정부나 업계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부는 유류세 재인하 목소리가 커지는 등 세금정책에 국민들이 큰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유사들 역시 일선 주유소나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며 억울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투명한 유통채널 구축과 직영 주유소를 대상으로 한 합리적인 가격체계 수립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휘발유값이 오를 때마다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고 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