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핵심인 기아자동차 노조원 1만여명이 조합비 납부 거부운동을 벌이며 금속노조에 반기를 들자 금속산별체제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홍귀 전 기아차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내던 31억원의 조합비 납부를 거부하는 문제를 조합원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금속노조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조합비 납부 거부를 위해 노조원 중 44%의 서명을 받아낸 상태다. 기아차 노조의 이러한 움직임은 산별체제를 통해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대단결을 꾀하는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에도 상당한 타격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민간사업장 가운데 민노총 최대 조직인 현대차 노조원들도 내부적으로 지역지부 편입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어 금속노조에서 강력히 추진해온 대기업 중심의 산별체제가 무산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아차 노조가 조합비 납부를 거부한 것은 금속노조 지역지부로 편입되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2006년 12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지역지부에 속해 있지 않은 완성차 4사와 만도 등 5개 기업지부 노조에 대해 올 9월까지 기업지부를 해체하고 지역지부로 들어오도록 결의했다.

금속노조는 이 문제를 오는 5월 임시대의원대회까지 매듭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기아차 내 정비와 판매노조가 여러지역에 흩어져 있는 데다 노조 내 기득권을 지키려는 온건파가 지역지부로의 편입을 반대,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온건파는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며 지역지부 편입에 찬성하는 강경파와 대립양상까지 보여 노노 간 갈등까지 빚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기아차 노조가 기업지부에서 지역지부로 편입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밥그릇싸움 성격이 짙다"며 "그렇다고 지역지부로 섣불리 전환했다가는 더 큰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노조로서도 금속노조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금속노조에는 210개 노조 14만5000명이 가입돼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 4만5000명,기아차 2만7500명 등 2개사 노조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 지역지부로 편입될 경우 울산공장 노조원은 울산지부,아산공장은 충남지부,전주공장은 전북지부 등 3개로 분할되며 전국 15개 시 · 도에 분포돼 있는 판매와 정비 노조원은 16개 지부로 쪼개져야 할 판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역지부 편입과 관련,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지만 명분과 실리를 따져보고 있다고 노동부 관계자는 전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완성차는 여러 지역에 노조원들이 산재해 있어 지역지부로 노조가 찢어질 경우 노사관계에도 큰 혼선을 줄 것"이라며 "이 때문에 현대차 노조도 크게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부 노동전문가들은 기아차의 조합비 납부 거부는 우리나라 산별체제를 무너뜨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국내 노동운동을 주도해온 현대 · 기아차 노조가 지역지부 편입을 반대할 경우 국내 노동현장에서 산별체제 정착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재계와 학계에선 산별교섭은 이중,삼중의 교섭 및 파업으로 인해 교섭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기업 간 근로조건 격차를 조율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