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가처분 사건은 시간이 생명… 매일 결정문 '납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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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민사수석부 '금녀의 벽' 깬 조은경 판사
기업ㆍ개인 명운 다투는 사건들, 하루에도 수십건씩 신청서 들어와
밖에서는 한 명의 20代 여성이지만, 법복 입으면 또다른 '나'로 변해요
기업ㆍ개인 명운 다투는 사건들, 하루에도 수십건씩 신청서 들어와
밖에서는 한 명의 20代 여성이지만, 법복 입으면 또다른 '나'로 변해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 가처분 사건 특별조사 기일이었던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358호 법정.5명의 법관이 들어서자 법정을 가득 메우고 있던 변호사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들어온 판사에게 쏠렸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그는 주위의 시선에 잠시 멈칫했지만 차분히 자리에 앉아 변호인들의 주장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가처분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가 생긴 지 20여년 만에 최초로 여성 법관이 재판에 참여하는 순간이었다.
그간 법원은 여성 대법관,여성 헌법재판관,여성 지방법원장 등을 배출하면서 '금녀(禁女)의 벽'을 차례차례 깨왔다. 또 지난 몇 년간 신임 법관의 절반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법조계의 여풍(女風)은 이제 색다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법원에는 알게 모르게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존재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민사수석부다. 키코 사건처럼 기업이나 개인의 명운을 다투는 긴급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요직이라 항상 업무가 폭주한다는 등의 이유로 민사수석부에는 그간 여성 법관이 배제돼 왔다.
이 해묵은 '금녀의 벽'을 2월23일자로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에 배치된 조은경 판사(29 · 연수원 36기)가 당당히 깼다. 키코 사건에 대한 결정문을 쓰느라 여념이 없는 조 판사를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만났다.
▶민사수석부 최초의 여성 법관이 되셨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법원에 여성 법관들이 많아지면서 성의 장벽이 걷혀가는 운좋은 시기에 법관 생활을 하게 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것 같아요. 그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의미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비(非)법대 출신으로 민사수석부에 온 것도 처음이라면서요.
"대학(서울대)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처음 법을 공부하게 된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룰'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여성으로서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다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했죠.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법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 가치를 구현하는 법관의 역할에 매력을 느꼈고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법을 해석하고 엄정한 기준을 세우는 일에 흥미가 일었어요. 경영에서 '고객'이 중심이듯 법원에서도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제도와 실무 처리 관행을 한번 더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
▶가처분 전담부의 특성상 업무 강도가 상당할 듯합니다.
"민사수석부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재판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하는 업무,법정에 들어가 변호인들의 의견을 듣는 일,결정문 초고를 쓰는 작업.하루에도 수십 건씩 가처분 신청이 들어오는 만큼 이 세 가지 업무를 정신없이 반복해야 하죠.아직 초기라 조금 여유있는 상황이라는데 매일 밤 11시나 돼서야 퇴근해요. 하루 14시간을 오롯이 일에 바칩니다. "
▶너무 힘들지 않나요. 가정도 돌봐야 할 텐데요.
"주중에 못다한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휴일엔 19개월 된 딸을 돌보며 주말부부인 남편(대구지검 검사)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급한 가처분 사건이 생기면 이것도 좀 힘들 것 같더라고요. 한 번은 어떤 기업이 수요일에 주주총회 개최 금지 신청을 냈는데 주총이 그 다음 주 수요일이라 정말 긴급하게 결정문 초고를 쓴 적도 있어요. 며칠간 '합숙야근'을 하느라 진을 뺐죠.하지만 일에 지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 별명이 '힘은경'이거든요. 또 하기 싫은 일이라면 괴로울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일 자체가 정말 흥미롭기도 해서 즐거워요. 다른 여가생활을 할 마음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아직 20대인데 법정에서 연세 많은 분들을 대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 조심스럽죠.어르신들이 예우를 갖춰 주실 때는 몸둘 바를 모를 때도 있고요. 그러나 그건 저 자신이 아니라 법에 따라 부여받은 지위에 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잘할 수 있다고 봐요. 헌법이 부여한 자격으로 구성된 합의재판부의 일원으로 재판을 하는 거니까요. 경험 많으신 재판장님과 제 의견이 합의를 거쳐 결론이 나오므로 저의 경험 부족 등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
▶판사와 '자연인 조은경'의 구분이 잘 되나요.
"법원 밖에서 저는 한 명의 젊은 여성일 뿐이지만 재판에 들어가기 위해 법복을 입을 때면 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마치 슈퍼맨이 옷을 갈아 입으면 평범한 회사원 클라크에서 괴력의 히어로가 되듯이 말이죠.준비를 많이 해서 재판 당사자들의 쟁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목소리도 좀 더 힘있게 해서 신뢰를 주도록 하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법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가발까지 쓰기도 하잖아요. 제게는 법복이 그런 역할을 해요. 처음 법관으로 임용받았을 때 한 부장님이 '판사가 법복의 옷걸이가 되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법복을 입는 것은 제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는 것인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고 합니다. "
▶법관이 된 후 달라진 게 있습니까.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합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없이 했을 사소한 잘못들도 따져봐요. 예를 들면 '불법 다운로드' 같은 것은 절대 안하거든요. 일상에서 법리적인 관점을 지나치게 들이대는 일도 생겨요. 일전에 집 전세 계약을 했는데 전에는 중개업소를 거쳐서 그냥 계약하면 된다고 생각했죠.그런데 부동산 관련 재판을 숱하게 하면서 보니 그냥 계약만 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자꾸 최악의 경우가 머리에 그려져 중개업소 아주머니가 짜증이 날 정도로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약을 하게 되더군요. "
▶법관 생활의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요.
"법관은 의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의사가 환부를 들여다보듯이 저희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환부를 들여다봐요. 그럴 때면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믿고 있는데 원고와 피고가 정반대로 주장하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 사건을 판단할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심적 부담이 굉장한 데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니까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좋은 직업이라고.법관도 '판단만 안 하면 좋은 직업'이라는 농담이 있어요. 정말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니까요. "
▶결정문 쓰기도 쉽지 않죠.
"배석판사로서 어려운 일은 결정문 초고를 시간에 맞춰 쓰는 일이죠.결정이 제때 나와야 하니까요. 순발력과 정확성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결정문 초고를 부장님께 드리는 일을 저희끼리는 '납품'한다고 하는데,우스갯소리로 '배석의 미덕은 납품 기일을 맞추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만큼 어렵습니다. "
▶법관으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적은 언제였나요.
"기업 관련 사건인데 기술자와 사장 간에 분쟁이 생겨 법정에 온 적이 있어요. 원래 두 분은 '깡소주'를 나눠 마실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는데 사소한 오해가 생겨 기술자가 소송을 제기하자 사장이 반소(反訴)를 내는 등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사건이었죠.그런데 기록들을 통해 사건을 들여다보니 양측의 대화가 없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해가 계속된 경우였어요. 그래서 양측을 설득해서 결국 조정으로 끝냈죠.재판이 끝난 뒤 나중에 기술자께서 전화를 해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시는데,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법 절차를 통해 단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죠."
▶어떤 법관이 되고 싶습니까.
"선배 법조인이 들려준 '청송(聽訟)의 기본은 성의(誠意)'라는 《목민심서》의 구절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법관이 어떤 판단을 하든 어느 한 쪽에게 유리하면 다른 쪽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의 말에 정성스럽게 귀를 기울이고,제출된 자료 등도 꼼꼼히 검토해 최대한 '성의'를 다하는 법관이 되고 싶습니다. "
글=박민제/사진=김영우 기자 pmj53@hankyung.com
그간 법원은 여성 대법관,여성 헌법재판관,여성 지방법원장 등을 배출하면서 '금녀(禁女)의 벽'을 차례차례 깨왔다. 또 지난 몇 년간 신임 법관의 절반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법조계의 여풍(女風)은 이제 색다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법원에는 알게 모르게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존재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민사수석부다. 키코 사건처럼 기업이나 개인의 명운을 다투는 긴급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요직이라 항상 업무가 폭주한다는 등의 이유로 민사수석부에는 그간 여성 법관이 배제돼 왔다.
이 해묵은 '금녀의 벽'을 2월23일자로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에 배치된 조은경 판사(29 · 연수원 36기)가 당당히 깼다. 키코 사건에 대한 결정문을 쓰느라 여념이 없는 조 판사를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만났다.
▶민사수석부 최초의 여성 법관이 되셨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법원에 여성 법관들이 많아지면서 성의 장벽이 걷혀가는 운좋은 시기에 법관 생활을 하게 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것 같아요. 그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의미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비(非)법대 출신으로 민사수석부에 온 것도 처음이라면서요.
"대학(서울대)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처음 법을 공부하게 된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룰'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여성으로서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다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했죠.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법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 가치를 구현하는 법관의 역할에 매력을 느꼈고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법을 해석하고 엄정한 기준을 세우는 일에 흥미가 일었어요. 경영에서 '고객'이 중심이듯 법원에서도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제도와 실무 처리 관행을 한번 더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
▶가처분 전담부의 특성상 업무 강도가 상당할 듯합니다.
"민사수석부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재판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하는 업무,법정에 들어가 변호인들의 의견을 듣는 일,결정문 초고를 쓰는 작업.하루에도 수십 건씩 가처분 신청이 들어오는 만큼 이 세 가지 업무를 정신없이 반복해야 하죠.아직 초기라 조금 여유있는 상황이라는데 매일 밤 11시나 돼서야 퇴근해요. 하루 14시간을 오롯이 일에 바칩니다. "
▶너무 힘들지 않나요. 가정도 돌봐야 할 텐데요.
"주중에 못다한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휴일엔 19개월 된 딸을 돌보며 주말부부인 남편(대구지검 검사)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급한 가처분 사건이 생기면 이것도 좀 힘들 것 같더라고요. 한 번은 어떤 기업이 수요일에 주주총회 개최 금지 신청을 냈는데 주총이 그 다음 주 수요일이라 정말 긴급하게 결정문 초고를 쓴 적도 있어요. 며칠간 '합숙야근'을 하느라 진을 뺐죠.하지만 일에 지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 별명이 '힘은경'이거든요. 또 하기 싫은 일이라면 괴로울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일 자체가 정말 흥미롭기도 해서 즐거워요. 다른 여가생활을 할 마음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아직 20대인데 법정에서 연세 많은 분들을 대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 조심스럽죠.어르신들이 예우를 갖춰 주실 때는 몸둘 바를 모를 때도 있고요. 그러나 그건 저 자신이 아니라 법에 따라 부여받은 지위에 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잘할 수 있다고 봐요. 헌법이 부여한 자격으로 구성된 합의재판부의 일원으로 재판을 하는 거니까요. 경험 많으신 재판장님과 제 의견이 합의를 거쳐 결론이 나오므로 저의 경험 부족 등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
▶판사와 '자연인 조은경'의 구분이 잘 되나요.
"법원 밖에서 저는 한 명의 젊은 여성일 뿐이지만 재판에 들어가기 위해 법복을 입을 때면 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마치 슈퍼맨이 옷을 갈아 입으면 평범한 회사원 클라크에서 괴력의 히어로가 되듯이 말이죠.준비를 많이 해서 재판 당사자들의 쟁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목소리도 좀 더 힘있게 해서 신뢰를 주도록 하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법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가발까지 쓰기도 하잖아요. 제게는 법복이 그런 역할을 해요. 처음 법관으로 임용받았을 때 한 부장님이 '판사가 법복의 옷걸이가 되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법복을 입는 것은 제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는 것인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고 합니다. "
▶법관이 된 후 달라진 게 있습니까.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합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없이 했을 사소한 잘못들도 따져봐요. 예를 들면 '불법 다운로드' 같은 것은 절대 안하거든요. 일상에서 법리적인 관점을 지나치게 들이대는 일도 생겨요. 일전에 집 전세 계약을 했는데 전에는 중개업소를 거쳐서 그냥 계약하면 된다고 생각했죠.그런데 부동산 관련 재판을 숱하게 하면서 보니 그냥 계약만 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자꾸 최악의 경우가 머리에 그려져 중개업소 아주머니가 짜증이 날 정도로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약을 하게 되더군요. "
▶법관 생활의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요.
"법관은 의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의사가 환부를 들여다보듯이 저희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환부를 들여다봐요. 그럴 때면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믿고 있는데 원고와 피고가 정반대로 주장하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 사건을 판단할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심적 부담이 굉장한 데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니까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좋은 직업이라고.법관도 '판단만 안 하면 좋은 직업'이라는 농담이 있어요. 정말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니까요. "
▶결정문 쓰기도 쉽지 않죠.
"배석판사로서 어려운 일은 결정문 초고를 시간에 맞춰 쓰는 일이죠.결정이 제때 나와야 하니까요. 순발력과 정확성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결정문 초고를 부장님께 드리는 일을 저희끼리는 '납품'한다고 하는데,우스갯소리로 '배석의 미덕은 납품 기일을 맞추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만큼 어렵습니다. "
▶법관으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적은 언제였나요.
"기업 관련 사건인데 기술자와 사장 간에 분쟁이 생겨 법정에 온 적이 있어요. 원래 두 분은 '깡소주'를 나눠 마실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는데 사소한 오해가 생겨 기술자가 소송을 제기하자 사장이 반소(反訴)를 내는 등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사건이었죠.그런데 기록들을 통해 사건을 들여다보니 양측의 대화가 없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해가 계속된 경우였어요. 그래서 양측을 설득해서 결국 조정으로 끝냈죠.재판이 끝난 뒤 나중에 기술자께서 전화를 해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시는데,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법 절차를 통해 단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죠."
▶어떤 법관이 되고 싶습니까.
"선배 법조인이 들려준 '청송(聽訟)의 기본은 성의(誠意)'라는 《목민심서》의 구절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법관이 어떤 판단을 하든 어느 한 쪽에게 유리하면 다른 쪽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의 말에 정성스럽게 귀를 기울이고,제출된 자료 등도 꼼꼼히 검토해 최대한 '성의'를 다하는 법관이 되고 싶습니다. "
글=박민제/사진=김영우 기자 pmj53@hankyung.com